연금으로 조삼모사?
연금으로 조삼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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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공약 중에서도 요즘 유독 기초노령연금을 갖고 왈가왈부 말이 많다. 65세 이전에 사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언제가 됐든 전 국민이 수급대상자가 될 것인데다 복지공약 가운데서도 액수까지 명시한 가장 구체적인 공약이어서 쉽게 도마 위에 올리기 적합한 소재일 수도 있다.

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으로 한다면 한국 최대 재벌인 이건희 회장에게도 월 20만원씩의 노령연금을 준다는 것이냐며 보편적 복지론 자체에 회의를 갖게 만드는 반론부터 연금 망국론까지 갖가지 반대논리들이 춤을 춘다.

이런 판국에 국민연금 일부 재원을 끌어다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삼는다는 방안이 흘러나오면서 세대갈등론까지 덧보태져 시끄러운 소리가 이어진다. 공약집에 따르면 연말까지 기초노령연금법을 기초연금법으로 개정하겠다고 했으니 이미 국민연금을 포괄하는 기초연금 구상이 담겨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일반 국민들로서는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대목일 터다.

가뜩이나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된다고 아우성을 치는 판인데 그 기금 일부를 떼어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삼는다니 누구 돈으로 누가 생색내느냐고 게거품 무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더욱이 앞으로 국민연금 재정상 젊은 세대는 돈을 더 내면서도 혜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꾸준히 들어온 판인데 그 기금에서 떼어내 노인들에게 혜택을 준다니 그 말만으로도 젊은 세대로서는 기절초풍할 소리 아닌가.

하지만 현재의 노인세대에게 국민연금은 너무 늦게 나타났다. 1988년 처음 등장한 국민연금이 그나마 직장인을 넘어 도시지역거주자로까지 확대, 사실상 전 국민 연금으로 전환된 것은 1999년이다. 그러니 국민연금 가입을 할래야 할 수 없었다. 또 일부는 납입까지는 했으나 기간 부족으로 인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사례도 있다.

그들에게 젊은 세대가 연금을 강탈당한다고 느낀다면 그건 그동안 국민연금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아온 정부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 국민연금은 내가 부은 돈 찾아 쓰는 개인 저축이 아니다. 물론 부은 돈에 비례해 연금을 지급받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노후생활안정을 위한 공적 부조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살면 살수록 더 많은 연금을 지급받지만 일찍 사망한다고 따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국민연금의 기금이 바닥나면 국가 재정이 이를 보충해줄 책임이 있다. 노인들과 나눠가짐으로써 내몫이 줄어든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라 할지라도 그들이 낸 금액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훨씬 많은 연금을 받는다. 여느 금융기관 저축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현재의 노인세대 대다수는 너무 가난하다.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하며 그들이 젊은 날 자신들의 노후를 계획할 겨를도 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자식을 기른 세대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힘겹게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일구었고 자식들을 세계 최고의 학력을 갖도록 길러낸 세대이면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었던 이들이다.

그런 오늘날의 노인세대는 이제와서 자식들이 부양을 힘겨워하며 짐스럽게 여기는 세태를 감당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그 노인세대를 부양해야 할 자식세대도 힘겨운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기는 하다. 그렇기에 부모 부양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기 위한 제도로 등장한 것이 기초노령연금이다.

그러니 노인 부양의 짐을 공적영역으로 끌어내자면 어차피 젊은 세대가 그 짐을 질 수밖에 없다. 또 그런 짐을 지다보면 오늘날의 젊은 세대도 시간이 흘러 그 공적 부양의 혜택을 누리는 날이 올 것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에서 덜어 노령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결국 다음 세대에게는 하나로 될 것을 둘로 나눠 생색내며 지급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발상이라는 데 있다. 현재의 국민연금도 일단 노후생활을 보장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하다. 그런데 거기서 일부 줄이고 노령연금으로 보태주겠다는 발상들이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조삼모사의 전형이 아닌가.

국민연금 기금 바닥나면 정부가 나서서 메우는 걸 당연히 여기고 국민연금 지급액을 줄여 노령연금 지급하며 생색낼 생각은 하지 말 일이다. 아직도 세계 속에서 한국의 연금은 너무 적고 노인들은 몹시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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