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불통(不通)의 시대'
남북 '불통(不通)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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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통’이라는 단어가 정치권에서 주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로 쓰이다보니 그 단어가 가지는 광범위한 함의가 종종 간과된다. 자연계에서도, 인체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통은 종종 참사를 일으킨다.

우리 신체만 해도 불통으로 인한 고통이 다양하다. 먹고 배설이 제대로 안 되어 괴로운 변비 하나만 해도 그로 인해 당장의 괴로움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뒤따르는 신체적 문제를 야기한다. 동맥경화처럼 혈액이 불통하면 생명이 위태롭다. 그보다 호흡이 불통되면 당장 위험이 닥친다.
 
경제적으로도 자금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 불통현상으로 인한 폐해 역시 심각하다.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 문제도 따지고 보면 재화의 불통으로 인한 현상이다. 옛 사람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을 바람직한 일상의 상태로 표현하곤 했다. 현대에 와서는 그 말조차 어색하게 물길마다 갖가지 인공물들이 가로막고 강제로 물길을 이끌고 있지만.
 
그런데 그 통하는 것이 때로는 양이 넘치거나 부족해지면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이 된다. 물론 넘치는 건 부족함만도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지간한 남북간 갈등에는 끄떡도 않던 증권시장이 비록 오보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드디어 요동치기 시작한 요즘 남과 북의 관계를 보면 갈수록 불통이 되어가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원인이 무엇이 넘쳐서인지 혹은 무엇이 결핍되어서인지 아리송한 측면이 있다. 그냥 귀를 막고 악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 말은 무수히 쏟아내는 데 들을 귀는 없는 모양새다.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곤 하던 예수가 어느 날엔가는 제자들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며 말을 시작한다. 아무리 얘길 해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말의 내용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현실에서 종종 그 표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 남과 북의 쏟아지는 말의 성찬이 또다시 그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북측이 하는 표현을 보면 참으로 거칠다. 그래서 종종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기 어렵게도 한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는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는 끝났다”는 말로 겁먹는 이들도 많지만 실상 그 속 뜻을 보자면 현재의 휴전상태를 정전상태로 바꾸는 평화협정을 하자는 얘기로 보이는 데 아무도 그런 쪽으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을 해석하고 분석하며 먹고사는 이들이 그 말 속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별로 들을 뜻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기야 핵무기 개발해놓고 그런 말을 하니 진정성을 인정받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 원하는 바에 대해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그런 현상이 어디 일방적이기만 할까. 남측에서 어쨌든 힘든 상황이지만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신임 대통령도 평화 프로세스 진행을 공약하고 당선된 마당인데 별로 그 얘길 듣고 있는 것 같지를 않다. 오히려 겁주는 소리만 계속해댄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해 못할 일도 없다. 물론 각자의 처한 형편이 서로 알고도 모른 척 해야 할 게 있고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이해를 하고 나면 대화는 가능하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남과 북이 물밑 대화마저 잃고 주변국만 쳐다보는 형편에 서로 내지르는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남과 북을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보이게 만든다. 당장 외국인들이 슬금슬금 자금을 거두려 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소한 돌출사건 하나로도 뇌관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다. 어느 사회에나 싸우고 싶어 몸을 비트는 모험주의자나 싸움구경하고 싶어 안달 난 극단주의자들은 있게 마련 아닌가.
한반도에서 전쟁 터지라고 누가 고사라도 지내나 싶은 지경이다. 중동에서 미군도 서서히 발을 빼고 있는 데 그 많은 무기들은 또 어디서 소비될까 싶기도 하고. 우린 그들을 믿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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