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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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1일 두 개의 눈에 띄는 발표를 했다. 하나는 금리 동결이고 또 하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수정 발표다.

먼저 금리동결. 박근혜 정부로부터 임기 첫해의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라는 사인을 거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김중수 한은 총재 주재로 열린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를 연 2.75%로 유지키로 함으로써 작년 11월 이후 6개월째 동결상태를 지속하게 됐다.

일단 미약하나마 경기회복의 징후가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 그 주된 이유다. 대북 리스크 증가와 금융시장 불안, 아베노믹스로 인한 수출경쟁력 저하 등 여러 가지 불안요인들이 있지만 대내외적으로 회복흐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 때문에 정부는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한은 입장에서는 새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경기부양 의지가 강한 상황에서 그 효과를 두고 본 뒤 추후 인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정책의 여력을 남겨둔다는 뜻도 있다고 보도됐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한은은 분명 경기의 회복흐름이 감지되고 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날 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8%에서 2.6%로 낮췄다고 밝혔다. 정부 전망치 2.3%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경기회복이 결코 녹록치는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웃에서 아베노믹스를 통해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을 쓰니 정부는 조바심을 낼 만하지만 한은은 섣불리 금리인하를 못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그 바람에 새 정부와의 정책공조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은의 금리동결 보도에 붙은 인터넷 댓글들은 금리인상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게 꽤 많다는 것이다. 이런 댓글들 중에 일부는 정부에 어깃장을 놓는 한은에 대한 불만을 표하려다 경제상식 부족으로 말이 꼬였나 싶은 것도 있지만 또 일부는 부동산 가격이 아직도 비싸다는 인식, 따라서 거품이 다 걷히지 않았다는 판단을 담고 있기도 해 팍팍한 서민생활의 불만 표출로도 읽힌다.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 정부의 인식패턴과는 반대로 가는 이런 서민들의 판단은 어디에서도 반영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계층 간 간극의 크기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이런 계층 간 인식의 차이는 최근 몇몇 신문 지면을 휩쓸고 지나간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화폐개혁 필요성 주장은 경제정책을 통한 경기회복 전망이 벽을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우리사회에 지하자금, 부동자금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 정부가 대선기간 중 지하자금 양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었고 또 많은 재정수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자 친정부적인 언론들이 앞장서서 화폐개혁을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화폐개혁을 통해 지하자금을 양성화하고 그 과정에서 재정확보를 해보자는 의욕의 표현일 터다.

이 소동은 정부 측에서 너나없이 가능성을 일축함으로써 잔잔한 소동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새 정부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돈 쓸데는 많고 쓸 돈은 적은 서민 가계와 많이 닮은 모양이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부자증세는 절대 안 된다는 고집을 보면 그런 공감도 삭아든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무르는 방안이 국채 발행이다. 물론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중에 추경용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증세 대신 재정상태 악화를 택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미국의 고민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번연히 알면서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하는가 싶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리스크보다는 실업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시점이라는 정부 인식에 동의하면서도 양극화문제에 대한 불감증 역시 걱정된다. 현 부총리는 한은 총재와 친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런 틈바구니에서 한은이 어떻게 중심을 잡아나갈 수 있을지 걱정거리가 늘어간다. 그런데 공공의 지급보증 및 성과에 따른 보상으로 민간의 공공사업 수행 재원을 마련한다는 서울시의 ‘사회혁신채권’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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