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존재 이유
금감원의 존재 이유
  • 홍승희
  • 승인 2005.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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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대출 이자 부당 취득이라는 명백한 불공정 행위를 한 씨티은행에 대해 달랑 ‘조정 권고’만 하더니 이어 피해 고객에 대한 환급 불가 결정을 내려 비난거리를 자초했다.

한국씨티은행으로 통합 과정을 밟고 있는 한미은행 노조에서는 아예 ‘사기’라고 은행과 부행장을 검찰에 고발까지 한 사안에 대해 조사계획조차 잡지 않고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 돈 돌려받고 싶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라는 등 직무유기성 발언을 하고 있으니 말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내국은행에 대해서도 금감원이 이런 태도를 보이겠느냐는 점에서 금융인들 속에서도 당연히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노조의 고발 사유는 CD연동의 변동금리 대출을 한 씨티은행이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대출 이자를 낮추지 않은 것은 고객에 대한 명백한 사기라는 것이다.

금감원 측은 이에 대해 은행의 대출 약정서가 모호하기 때문에 고객을 속인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내용이 모호한 약정서를 묵인 내지는 방치해온 금감원은 스스로의 직무유기를 자인하는 꼴이 될 뿐이다.

또한 뒤늦게라도 잘못이 드러났다면 조사를 통해 명백하게 사실 확인을 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금융기관의 일을 사법기관의 결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태도도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부인하는 행위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증권, 보험 등으로 분산돼 있던 감독기구들을 통합, 막강한 권한을 갖고 등장한 금감원이다. 그런 금감원이 힘이 없어서 할 일 못할 리는 없다.

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를 절대절명의 명제로 내걸고 구조조정을 감행해 왔던 대한민국의 금융시장은 따라서 진입장벽 등에서 외국계 자본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데 주력했고,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이 외국 자본의 지배하에 들게 됐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금융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룰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경쟁의 룰이 불공정을 시정하는 것이어야지 또 다른 불공정을 만들어 내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외국 자본 차별 말라고 했지 국내 자본 역차별 소리가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외국 자본에 친절한 것은 좋으나 비굴해 보일만큼 과도한 친절은 어떤 이유에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금감원으로서는 그동안에도 외국 자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해서 말을 들어왔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지도 모른다.

아니, 한국 경제가 외자에 의존한 개발계획을 추진할 때부터 외국 자본은 귀빈 대접을 받으며 이 땅에서 많은 이익을 챙겨왔다.

물론 그랬기에 그나마 한국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비교적 무난하게 그 어려움들을 헤쳐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는 외국 자본들의 적대적 M&A로 국내 대표기업들이 토종 경영권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재벌들의 과도한 엄살이 나오고 외환위기를 겪으며 알토란같던 국내 금융기관들을 다 잃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던 대중심리가 일부 그에 호응하는 시기이다.

그런 대중적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심리적 저지선을 넘어서면 사회적으로 대외 자본에 대한 시장 폐쇄적 지향이 나타날 위험이 커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실상 뉴브릿지, 소버린 등과 같은 외국 자본들이 한바탕씩 국내 시장을 휘젓고 사라질 때마다 대중들은 분통을 터트려왔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고 나가는 그들이 국내에 세금 한 푼 안내더라는 뒷북치는 소리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초라하게 찌그러드는 고통을 느낀다. 왜 대한민국을 그토록 초라하게 만드나.

우리 사회는 한번 도움을 받았다 싶으면 두고두고 은혜갚기 타령을 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것도 사적 관계 아닌 공적 관계, 특히 국제 관계에서 그렇고 강자에 대해 특별히 심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병자호란도 겪었고 구한말에는 한반도를 열강의 각축장으로 내놨다. 우리는 그것을 사대주의의 폐해로 배워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각자의 이익 확보에 충실해야 할 ‘시장’을 얘기한다.

그 이해의 한 끝에서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내기 위해 정부가 있고 국가기구가 있다.

그런데 국민들 눈에 비친 그들이 우리 이익 대신 상대 편들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비친다면 어떨까.

외교부가 그렇듯 금감원 또한 그렇게 비칠 위험을 늘 가슴에 새기고 일해야 할 위치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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