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자의 겸손함
돕는 자의 겸손함
  • 홍승희
  • 승인 2005.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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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을 맞은 올해는 한편으로 분단 60년의 뼈아픈 시간으로도 기록된다. 하지만 그 상처의 시간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덕분에 이제 6.15남북공동성명 5주년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 까닭으로 올해 광복절은 유난히 남북간 긴밀한 관계 개선의 신호들이 많이 나타났다. 82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북한 대표단이 서울에 와서 광복절 남북한 공동 행사를 한 것은 물론 현충원 참배, 국회 방문 등 연일 뉴스를 생산해 내는 그들 북한 방문단으로 인해 남한 언론들을 신명나게 했다.
이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보수세력의 반발이 직접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북한 대표단은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청와대를 방문, 그동안의 식량·비료지원 등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고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서는 정중하게 방북 초청을 했다.
예전의 그 날카롭던 경계 태도가 상당히 누그러든 저들의 그런 행보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남북간 신뢰가 쌓여가고 있다는 한 증거로 봐도 좋을 듯싶다.
남과 북이 이만큼 부드러운 관계를 갖게 되기까지 저들 사회 내부에서도 그랬을 터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역시 많은 인내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오랜 적대감을 털어내는 데 따른 반발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선의가 하찮은 실수들로 인해 곡해되며 곡절을 겪은 일 또한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한 발 앞선 양보가 이끌어 낸 성과다. 오랜 적대감을 털어내려면 결국 누군가 먼저 양보해야 하며 그 양보를 먼저 하는 쪽은 그만큼 사회체제나 여타의 상황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기에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실상 6.15남북공동성명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몇 년간의 잇단 재난으로 외부적 도움이 절실한 북한 사회를 향해 먼저 사과하고 손 내밀기를 요구하는 심리적 보상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 사회적 위기감마저 증가하는 상태에서 먼저 손을 내밀기는 지난한 일이다. 개개인들로서도 자존심에 상처를 내면서 오랜 적대자에게 무엇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더구나 오랜 시간 폐쇄됐던 사회, 그래서 사고체계 역시 정체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가 그렇게 행동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자주 쓴다. 우리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고 또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자. 아니, 그보다 불과 30여년 전의 우리 사회가 보인 폐쇄성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되돌아보자.
외국 원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 했으며 그러면서도 그 원조에 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었었던가를.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 얼마나 경계하고 우려의 눈으로 바라봤던가를.
지금도 물론 외국인 투자에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계심은 한탕주의식 돈장사에 혈안이 된 핫머니로는 향할지언정 생산적 투자에 대해 거부하지는 않는다. 우리 경제가 그로인해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대신 그런 투자를 우리가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그 시기에는 원조국의 합리적 요구조차 고압적 자세로 보이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당당히 요구해야 할 부분조차 주눅들어 눈치보며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자신감의 결여는 정당한 거래보다 일방적 시혜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불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리가 혹여 대북지원사업, 대북투자사업에서 그런 시혜자 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조심하고 돌아볼 일이다. 대북지원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당장 대가는 없어도 결국 그 지원은 대북투자사업을 위한 일종의 비가시적 인프라 구축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 상호간 적대감 해소로 절약되는 사회적 제비용을 따져봐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적잖은 기업이 대북투자에 눈을 돌리는 것도 결국 수익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정주영씨의 남다른 발상, 비범한 행동이 새삼 돋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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