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대화의 끈부터 이어야
남북관계, 대화의 끈부터 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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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시절 남쪽이 물난리를 겪을 때였다. 느닷없이 북에서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는 통보가 왔고 남쪽 정부는 북에서 보내는 구호물자를 받을 만큼 시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의 구호물자를 덥썩 받았다.

그렇게 해서 받은 구호물자는 받는 우리 쪽에서 북의 형편이 어떠한지를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큼 조악했다. 아마도 군수비축미까지 긁어모은 것이 아닌가 싶었던 묵은 쌀과 보자기로 쓰기에도 민망한 옷감들이었다. 일부에서는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게 당시 북한의 물자 수준이고 북한의 생활물자의 빈곤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볼 수 있었다.

어떻든 그 물자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이후 북한의 수해에 우리 쪽에서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는 제의를 할 바탕을 만들었고 북한의 구호물자가 남한의 안정을 흔들지도 않았다.

경색된 국면일수록 사소한 연결고리라도 생기면 일단 잡아당겨야 앞으로 나아갈 계기가 마련된다. 밀고 당기기를 할 때도 상대가 강하게 당길 때에는 이쪽에서 힘을 빼고 슬쩍 끌려가줌으로써 반전이 생긴다.

지금 북에서는 6.15공동선언 기념식에 남측 민간인들 참여를 요청했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방북을 허용함은 물론 이들이 방북하면 제품 반출 문제를 포함해 공단 정상화를 위한 어떤 협의도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입주기업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의 동행도 사실상 허용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그런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당국간 실무회담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민간을 향해서만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것에 대해 민관 이간책 정도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의 속내에 의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무조건 북이 낼 수 있는 모든 패를 내놓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다며 이쪽 방식만 고수하면 관계에 어떤 진전도 가져올 수 없다.

협상을 할 뜻이 있다면 사소한 문제에서는 통 크게 양보하며 판 전체를 아우르고 관리해 나갈 자세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의 그림으로는 자칫 남북관계에서 남측이 더 옹졸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비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북한이 지금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왕따 당하는 형편이니 우리 편이 많다고 가슴 펴고 오만하게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한반도의 평화와 나아가 민족 통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살 만하다.

이미 자본시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를 풀어갈 의지가 없는 것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린 듯하다. 북의 제안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주가가 출렁거리다 정부 반응에 다시 가라앉은 것이나 대북 송전을 담당한 회사 주식들의 미지근한 주가 흐름도 그런 반응의 하나로 보인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도합 10년간 터졌던 남북간 대화의 물꼬가 이명박 정부 5년 간 완전히 막힌 근본 원인도 대화의 장을 열기 전에 먼저 북에 대해 내놓을 패를 다 내놓고 고개 숙이고 들어오라는 자세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남북간 경색은 나날이 심화됐다.

한국의 보수세력 중에도 통일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종종 이승만 정부 시절 북진통일론의 망상을 가진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흡수통일 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그들은 독일 통일이 일방적 흡수 통일이었던 것을 좋은 예로 든다.

그런데 그 독일 통일의 길에서 서독이 동독에 얼마나 많은 물자를 퍼부었고 그 틈에 서독에 동독 간첩들이 어떻게 활개를 쳤었던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서독이 스스로 문을 활짝 열고 동독을 끌어안았기 때문에 동독인들이 서독을 향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품에 안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단계까지 얘기하기는 지금 단계에서 너무 성급하다. 다만 하루하루 피가 마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입장만이라도 먼저 헤아린다면 정부가 북한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무조건 거부감부터 보일 일은 아니다. 의심은 의심대로 갖고 가되 품어 안고 관리하려는 대범함이 아쉽다. 지금 우리에게 그럴만한 역량이 부족한가를 정부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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