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하는 부동산 대책
헛발질하는 부동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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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은 요술 공화국이다.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불가능하다던 것도 삽시간에 가능한 것으로 바뀐다. 요모조모 다양한 변수들을 대비해보는 시뮬레이션의 과정은 없다. 그러다보니 나오는 정책마다 좌충우돌하느라 진전이 없다.

서민들의 주요 관심사의 하나인 부동산 대책도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근본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없이 책상머리에서 홍보효과 높이는 데만 중점을 두고 만들어진 것들이 줄을 잇는다. 대통령 대선공약의 하나로 이 달과 다음 달에 잇달아 출시되는 ‘목돈 안 드는 전세대출1, 2’도 그런 대책의 하나다.

이 정책을 내놓은 이들은 전세살이의 경험이 없거나 있더라도 옛일이어서 현재의 전월세 시장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인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정부가 최소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월세 대책을 내놓으려면 세입자의 입장만 봐서도 안 되고 집주인의 입장만 알아서도 안 되는데 지금 내놓고 있는 대책이란 것들이 그 어느 쪽도 제대로 보고 있질 못하다.

집 주인에게 세입자의 부족한 전세금을 대신 대출 받고 이자만 대신 내게 하라는 데 전세 물건이 모자라 아우성치는 시기에 집 주인이 뭐 부족하다고 그런 세입자를 받겠는가. 최근의 한 사례다. 집주인은 세입자가 전세금을 담보로 대출 받았다는 말에 기겁해 8년을 살던 세입자와 계약연장을 하지 않았다. 이런 판에 세입자를 위해서 대신 대출을 받아줄 집주인이 있겠는가.

게다가 세입자 입장에서도 대출이 있는 집은 기피대상이다. 대출이 없는 집이라 해도 전세가 폭등 속에 집값은 떨어지니 전세보증금이 안전한지 늘 불안한 게 현실이다.

세입자에게 전세금 보전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은행에 전세보증금 반환청구권을 넘겨주며 추가 대출을 받으라 하면 그건 또 얼마나 불안한 조건인가.

가뜩이나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는 가계대출을 더 늘리라고 재촉하는 정부의 정책, 그 자체만으로도 한숨이 나온다. 최근 가계대출 규모가 980조원을 넘어섰다는 데 얼마나 더 늘어나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인가.

현실감 없기는 야당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전셋집이 부족하다는 데 '전세금 상한제'라니.

지금의 전월세 시장에서 집주인이 '갑'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집주인들 대다수가 온전히 갑의 입장에만 서있는 것도 아니다. 사정상 내 집 세를 놓고 다른데서 세를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출 받아 다른 데 집을 사고 이사 가면서 먼저 집이 팔리지 않아 어쩔 수없이 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 또는 퇴직금을 털어 살던 집을 다가구주택으로 고치고 월세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은퇴자들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갑의 횡포를 따질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세대란을 잠재울 방안으로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대체할 방안을 주문했고, 정부는 또 그 주문에 맞춰 오는 28일에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오는 예상 대책이라는 것이 양도 및 취득세 인하 혹은 영구 감면 등 과거 부동산 거품을 몰고 왔던 때 묻은 대책들 뿐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퇴로가 열릴 징후에 신흥국들부터 외환위기 우려가 터져 나오는 마당이다. 신흥국 위기의 주요 축의 하나가 부동산이다. 양적완화로 풀린 달러가 신흥국 부동산 시장을 휩쓴 덕분에 거품이 잔뜩 꼈는데 이제 그 자금이 빠지려 한다. 예상되는 결과는 뻔하다.

외국인 부동산 매입에 비교적 엄격한 한국 시장은 그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움직임에서 배울 바는 있지 않은가. 부동산 거품이 일면 어떻게 위험해지는지, 그 거품이 꺼질 때는 또 얼마나 더 위험해지는지를.

서민들에게 전세 대신 매수에 나서라고 하려면 우선 수입이 안정되도록 해야 하고 언제든지 집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세입자들에게는 주택가격이 소득수준에 적합하도록 공급해야 하고 주택보유자들에게는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는 대신 차라리 정부와 금융기관이 주택을 매입해 임대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비용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나마 그런 길이 열리면 시장 전체의 열기를 식히는 데는 효과가 있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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