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퇴직자들의 가계부
조기퇴직자들의 가계부
  • 홍승희
  • 승인 2005.1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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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망은 구구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선행지수들의 변동도 일관성이 낮아 저마다 아전인수식 예측을 하게 만든다. 내수경기 진작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수출경기가 그나마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몇 개 업종의 소수 대기업들이 끌고 가는 것일 뿐이어서 생산규모에 비한 사회 경제적 파급력은 매우 낮다.

호황을 누리는 상품의 종류는 열손가락이 다 필요치 않을 정도로 몇 몇 개에 집중돼 있다. 그러니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를 살리려면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 내수경기 활성화 밖에 길이 없다.

내수경기를 살리려면 어쨌든 주 소비층의 소비여력이 생겨나야 하는데 그 연령층의 실업률은 높고 평균 소득규모는 요구되는 지출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다. 과연 어떤 상태인지 조금은 상세히 살펴보자.

30대에도 실직자는 있지만 그 비율도 낮고 또 그들에겐 재취업의 기회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조기퇴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50대는 물론 40대 중반만 넘어가면 재취업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재취업 하더라도 대개는 저임금 노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간 벌어놓은 것이라야 고작 사는 집 한칸에 퇴직금과 약간의 저축액 정도. 퇴직금이라야 근무기간 10수년에 많으면 2년치 월급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또한 집장만하고 아이들 가르치느라 저축 총액은 퇴직금 수령액에 미치기도 어려울 게다.

이 상태에서 서투른 장사길에 나서면 열에 아홉은 원금 까먹고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들이 그간 닦아온 경험들을 백지상태로 돌리고 새로 나서는 장사길이 수월할 리 없다.

그럼 투자처는 있을까. 많아서 1~2억원 쯤 투자여력을 갖고 있다 해봐야 그것으로 생활비 벌 투자처는 없다. 은행 금리는 최근 약간의 상승이 있었다지만 물가상승률에 미치기에도 어림도 없다.

원금 보전도 어려운 은행금리로 생활이 가능할 리도 없지만 그대로 그 이자를 고스란히 생활비로 쓴다해도 높은 세율의 세금을 떼고 나면 월 30만~60만원도 되기 어렵다.

증시로 눈을 돌리기엔 얻는 소득에 비해 위험부담이 크다. 안정적 투자에 나서 성공적 결과를 얻는다 해도 은행금리보다 50% 이상 더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럼 부동산으로 갈까. 여러 규제를 피해 안정적인 월 소득을 구하자면 결국 상가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될 터인데 빌딩 하나라도 가질 규모라면 모를까 저만한 액수로는 점포 하나쯤 구하는 게 다인데 점포에서 얻을 소득이 제비용을 빼면 월 0.5% 유지하기가 고작이다. 그나마 내수부진이 계속된다면 투자안정성 또한 나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투자만으로는 최저생계비를 얻기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투자소득과 종전 소득에 비교하기도 무색할 저임금 노동 소득이 합쳐져 겨우 한 가구의 최저생계비가 얻어진다.

그마저 저임금 노동의 안정성이라도 높으면 다행이겠으나 실상은 그마저 불안하기 그지없다. 당연히 소비 여건은 악화되고 미래 전망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안정적 미래 전망이 불가능하고 소득은 그저 최저생계비 수준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가계들을 앞에 놓고 내수 진작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경제 문제의 바탕이다.

이들을 어떻게 소비시장으로 끌어내느냐는 게 결국은 기업의 지속적 생산 활동을 보장하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관건이란 얘기다.

이즈음 저출산이 사회문제라고들 하지만 부모세대의 그 불안한 노후를 바라보며, 큰 아이 대학도 마치기 전에 조기퇴직해 자식 학비마련에 전전긍긍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 낳아 기를 자신감이 생기겠는가.

그렇다고 고성장 시대와 같이 누가 장밋빛 미래의 청사진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줄 수도 없는, 그런 단계에 이미 진입한 우리 사회에 맞는 시스템 마련이 경제적 측면에서든 사회적 요구로서든 시급한 상태다.

그런 현실적 토대에 대한 고민없이 반복되는 정치적 구호나 이익수호를 위해 매끄럽게 개발된 재계의 논리와 유려한 수사들이 공허하기 그지없다. 라이프사이클의 변화가 담기지 못한 금융상품들 역시 부실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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