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후폭풍과 한국 정보기관
스노든 후폭풍과 한국 정보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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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세계 35개국 정부를 감청했다는 스노든의 폭로를 토대로 세계 각국 정부는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해 감청 흔적을 발견했고 결국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각국 언론들도 사실 확인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각국의 동향에 비해 감청 대상국 명단에 포함된 한국 정부는 참 미지근하게 반응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가 성립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 정부에 대해 감청 사실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발전이라면 발전이겠지만 독립국가 정부가 취할 태도답지는 못하다.

국내 정치에 간여할 때는 펄펄 날라 다니는 듯 보이는 국가정보원도 이런 해외 정보기관으로부터의 국내 정부 감청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란다. 외교부 대변인의 말 그대로 미국의 도청 기술이 워낙 최첨단 기술력이어서 손 쓸 수 없는 것인지, 미국이 건네주는 정보에만 매달리다 보니 자국 대통령이 감청대상이 되는 것쯤은 감내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러니 사실 확인을 요청한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응도 무성의하기 그지없다. ‘엄중 주시’하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사실 확인 요청에 미국은 엉뚱하게도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국내 여론 때문에 그저 한번 액션을 취했다고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미국 정보기관의 청와대 감청 의혹은 실상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70년대 초, 한국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불거지던 시절에도 미국의 감청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부가 침묵함으로써 그야말로 ‘조용히’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정보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미국은 청와대 내에 감청장치가 설치되지 않아도 근거리(예를 들면 광화문의 미 대사관 건물 정도 거리)에서 광범위 감청을 통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정도 되면 당시 한국 정보기관의 기술 수준으로는 접근조차 힘들다 여긴 것도 일면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나 브라질 정부도 파악한 감청 흔적을 한국 정보기관들만 확인할 수 없다는 걸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그런 현상에 접근하기를 미리 포기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런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며 국제 정보를 오로지 명나라를 통해서만 구하고자 했던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밖으로 나가 정보를 구하려 노력하는 것보다는 미국이 던져주는 정보를 앉아서 얻는 게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독일 정부는 직접 감청 대상인 메르켈 총리가 강력히 항의하고 브라질은 대통령의 국빈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유엔에서는 도청 당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 중 21개국이 미국의 불법 도청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빠졌지만.

이 나라들이라고 미국 정보기관과의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르몽드지가 프랑스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의 꾸준한 정보교류 사실을 보도했지만 이게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미국의 불법 도청을 한국 정부처럼 ‘조용히’ 처리하고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 국민들이 그런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를 용인할 것 같지도 않고.

각국 정부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지금 미국 정부에 의해 반역자로 쫓기고 있는 스노든에게 국제사회는 이런저런 상을 안겨주고 격려하기에 바빠 보인다. 유럽의회는 스노든을 올해의 사하로프 인권상 후보로 올렸다.

또 미국의 전직 CIA 요원들이 만든 샘애덤스협회는 스노든에게 ‘정보보호 및 정보윤리 강화를 위해 힘쓴 정보 관련 전문가’를 선정해 주는 ‘내부고발자상’의 올해 수상자로 스노든을 선정, 관계자 4인이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상을 수여했다.

반면 미국내 일부 지식인들은 ‘빅 브라더 흉내 그만’하라고 항의하는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지만 미국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미국이 세계의 빅 브라더이길 희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미국 시민들에게서 발견되는 미국의 미래는 우울한 잿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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