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과 시장주의
공공성과 시장주의
  • 홍승희
  • 승인 2005.12.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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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시장지상주의가 선택지 아닌 신앙대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의 이념은 분명 사회적 역동성이 발현될 수 있는 인류 역사의 자연스럽고 소중한 유산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 출발 의도가 좋은 이념도 일단 절대유일성을 부여받으면 화석화되면서 우상으로 전락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보여주는 시장지상주의 역시 우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공동체의 건강한 존속을 위해 도구로 쓰여야 할 사상, 이념이 신앙대상으로 변질되면 그 자체가 사회발전의 족쇄가 됨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충분히 경험했다. 당장 70년대 초까지 남한 사회를 앞질러 발전하는 듯싶던 북한 사회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그랬듯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이 단지 체제 자체의 결함에서 유래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경솔하다. 사방에서 옥죄는 경제제재를 견뎌낼 사회는 없고 국제 사회에서 왕따를 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벼르는 초강대국이 있는 한 현재의 상황을 자력으로 돌파해 나가기는 어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부 비판마저 억제한 채 스스로 외부를 향해 빗장을 걸어 잠근 세월동안 사회 내부적으로는 분명 여기저기 녹이 슬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외부로부터의 자극없이 유연성을 되찾기가 그리 녹녹할 리 없다.

우리는 또한 지난 우리 역사에서 주자학 이외의 사상을 마구잡이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이며 사상의 화석화를 진행시켰던 조선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신이 된 적이 없는 공자를 신격화시키며 죽은 공자를 사상적 후견인으로 삼았던 조선은 이름만 이씨 왕조였지 실상 공자주의를 무기화한 사대부들의 나라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민족 스스로의 역사도 잃고 전 지구적 변화의 시기도 놓치며 후손들로 하여금 식민지의 치욕을 겪게 했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인류 문명사의 주류로부터 벗어난 적 없었다는 사학자 정수일의 증명이 아니라도 그들의 말발굽이 지나간 전 세계 어느 곳이나 직접 지배한 원나라조차 부마국의 지위일망정 유일하게 독립된 국가로서 고려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했던, 그런 민족이다.
 
그 민족이 19세기를 낭비한 결과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화석화된 주자학은 민족적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 이후 일제 식민사학에도 굴복하게 만드는 토대를 마련했으니 그 폐해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그 어두운 흔적이 아직도 다 걷히질 못해 새로 개관한 국립박물관은 세계 학계가 인정하는 고조선 유물을 출처를 알 수 없는 남의 유물로 둔갑시켜 놨다.
한 사회가 화석화된 사상, 이념에 사로잡혀 유용하게 써야 할 도구를 단지 숭배만 하는 우상화로 치달아 가면 그 사회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시장주의는 또다시 숭배대상이 되려 한다. 속히 우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살릴 도구로 제자리를 찾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은 찬밥 취급당하는 공공성의 미덕을 되살려야 한다. 특히 외국 자본들이 국내 기간산업에까지 지배력을 넓혀나가는 시대다. 그들의 투자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적극 유치해야 할 입장에서 국내 자본도 이 시장에서 제대로 살아남으려면 사회 공동체의 건강한 존속을 위한 공공성의 확대를 지지해야 한다. 자본만을 위한 자본주의는 결국 자본마저 설 자리를 잃게 하고 시장만을 위한 시장주의는 시장을 죽이는 칼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기관이 단지 사유재산이 되고 금융기관이 단지 주주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기업화하면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력화를 초래하고 만다. 대통령 아무개가 좋고 싫은 것과는 별개로 대한민국 정부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정부에 대한 능멸, 즉 대한민국 국체에 대한 조롱과 모욕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국민 모두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 될 뿐이다. 그리고 민영화와 공공성은 결코 양립 불가능한 모순 관계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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