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지상주의와 안전 불감증
효율 지상주의와 안전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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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안전’을 강조했다. 그래서 행정안전부는 안전을 강조하기 위해 안전행정부로 개명까지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에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의 의지를 담은 선언적인 말 몇 마디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안전 불감증은 사회적 습관처럼 굳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정부가 불필요한 정보 수집을 막겠다고 해도 당장 관청에서부터 민원인들에게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 경영자들은 당장의 지출만 줄일 수 있다면 안전성 따위는 내던져 버리고 효율을 우선해서 쫓는다.

물리적 사건 사고와 정보 유출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사회가 위험에 대해 매우 무딘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파악해 봐야 한다. 여수 한화 화약 공장의 폭발 사고는 수습 과정에서 다시 폭발하더니 이번엔 사고 조사 중 또 한 번의 폭발 사고로 이어졌다. 게다가 국과수 직원과 경찰관은 방호복도 없이 조사 활동을 벌이다 부상까지 당했다. 그 안전 불감증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여수 앞바다에서는 GS칼텍스 정유공장으로 들어가던 유조선이 부두 접안을 위한 감속도 제대로 안했는지 규정 속도의 3배에 달하는 속도로 접안하다 송유관과 충돌, 다량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해 피해 어민은 물론 간접적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주민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한화 화약 공장의 세 번째 폭발사고가 나던 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빙그레 공장에서는 암모니아 가스 유출에 뒤이은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한화 화약공장도 그러더니 빙그레 공장도 먼저 관계 기관에 신고하고 도움을 받았더라면 훨씬 줄였을 가스 유출 피해를 폭발사고로까지 키워버렸다. 가스 유출을 확인하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대피시키면서도 현장에 직원 3명을 투입시켜 물로 가스 농도를 희석시키려다 폭발사고로 확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유독성 가스인 암모니아가 다량 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미뤄 지역주민 등의 대피를 지연시키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워낙 위험성이 높은 사회여서인가. 아니면 넘치는 객기 때문인가. 어쩌자고 사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무모하게 인력을 투입하고 대책도 없이 사고 현장에 접근하다가 더 큰 사고를 유발시키는 게 마치 사고 사업장들의 정해진 수순처럼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삼성반도체 수원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났을 때도 그랬다. 근래 들어 유독성이 강한 불산 누출사고는 1년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 다발성 사고에 속한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시작으로 2013년 1월에 잇따라 발생한 수원 삼성반도체와 청주공단에서 누출사고가 발생하더니 올해는 2월 들어 금산에서 또 사고가 터졌다.

이런 생산공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들은 근접해 있는 사람들의 신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안겨주지만 구체적 피해자가 소수라는 이유 때문인지 혹은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의 이미지 때문인지 아리송하지만 근래 들어 제대로 보도조차 잘 안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 국회에서도 요란한 질문 공세가 펼쳐지고 있는 카드 고객 정보의 다량 유출 사고는 당장 누가 죽고 다치는 사고와는 다르지만 자칫 고객 개개인의 인생 설계 자체를 허물어 버릴 수도 있어서 어느 면에서는 그 위험성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고객만 피해를 보고 그만인가.

금융기관의 존립 근거는 ‘신용과 신뢰’다. 그런 금융기관들이 신용과 신뢰 대신 비용 효율을 선택했다. 그 결과가 고객 정보에 대한 무책임한 방기로 인한 대량 유출 사고로 이어졌다. 그런 금융기관들이 잃은 신용과 신뢰는 어찌할 것인가.

정부의 제도적 허점도 이것저것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했지만 당장 같은 카드사 중에서도 정보 유출이 없었던 곳이 있다는 점을 보면 당장 카드사 자체에서 안전 확보를 제대로 못했다는 비난에 답할 말이 있을까 싶다. 외주를 줘서 내부 인건비를 줄이려 했겠지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니 내부에서 정리해야 할 개인 정보사항들마저 몽땅 외주업체에 맡겼다가 사단이 났다. 그래서 얻은 비용절감 효과와 잃은 신뢰, 어느 것이 더 큰지를 누가 계산 좀 안 해주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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