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대책의 딜레마
가계 빚 대책의 딜레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디어 중앙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됐다. 현 정부 들어 1년 만에 세 번째로 나온 가계부채 대책으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할 만큼 정부대책에서는 긴장감이 묻어난다.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이라는 강수를 둔 것에 대해 논란도 일고 있지만 그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경제의 심각한 이슈라는 점을 정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천21조 원으로 불어났다. 가계부채 총량이 9년 만에 두 배로 늘었고 특히 지난해 4분기에만 28조 원이나 늘어나 2002년 통계작성 이래 역대 최대의 증가액을 기록했다.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고 전세대란을 잡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끝에 나온 게 결국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이다. 주택금융공사에 정부와 한은이 4천억원을 추가 출자하고 영세자영업자 대상의 바꿔드림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증대상 차주 기준을 연 20%이상 고금리 대출자에서 15%이상 대출자로 자격요건을 낮추기로 한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소비위축→내수부진→성장잠재력 훼손→소득감소→소비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할 요인일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와 같은 해외발 변수에 극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즉 국가 경제체질의 약화 요인이다.

당연히 정부의 긴장이 요구되는 사안이지만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이 초래할 위험도 결코 작은 문제는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발권력을 동원할 수도 있고 과거에도 종종 해왔던 일인데다 요즘은 경제대국들도 경기부양을 위해 발권력을 동원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그 위험성에 대한 얼마나 면밀한 검토를 했는지가 염려스럽다. 중앙은행 발권력이 자칫 남용될 경우 가뜩이나 물가도 불안한 상황에서 물가에 날개를 달아 줄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저소득층의 회생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심화된 양극화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정부가 지향해야 할 복지국가로부터는 더욱 멀어져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사회정책을 입안함에 있어 저성장기에 들어선 한국경제의 현실을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한다. 정권을 쥐고 나면 성장에 대한 조급증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겠으나 섣부른 성장드라이브로 사회적 병증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같은 조치가 가시적 성과를 거둔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울 것이나 지난번 하우스푸어 대책처럼 또 다른 병증을 불러온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더욱 풀 수 없는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밖에 안 된다. 일이 지금보다 더 얽혀버리면 갈수록 해결 방법을 찾기는 어려워질 뿐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난제는 부풀어있는 고무풍선 같아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 오르는 형국이라 섣불리 어느 한쪽을 풀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책의 미세조정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때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기는 특히 정치적 목적에 휘둘려 성급한 정책을 쏟아내기 쉽고 그로인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위험성도 커지는 때다. 개별 가구의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싼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미 심각해져 있던 가계부채를 더 늘릴 길을 열어줬고 그로인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가계부채가 늘어나게 만들었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난번 대책으로 주택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주류 미디어들은 그런 정부 주장에 힘을 실어주려 급급하지만 그런 뉴스를 접하며 집 없는 서민들이 실제로 주택구입에 선뜻 나설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진 돈이 적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바심을 불러일으켜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싼 주택을 구입하라고 돈만 더 풀어서 얻게 될 결과는 참담함 뿐일 수 있다. 가계부채를 줄여가기 위해 저금리 대출을 늘린다 해도 결국 원금상환 능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위험성을 먼저 고려해야만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고 요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과연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한 것인지가 자꾸 걱정스러울 뿐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