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와 재벌가
왕가와 재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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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금호그룹에서 또 터졌다. 삼성그룹의 숨겨졌던 자금의 상속권을 둘러싼 분쟁이 그쳤나 했더니 그 전에도 한번 터진 적이 있는 금호그룹의 분쟁이 재발한 모양이다.

그간 재벌가의 형제간 다툼은 다반사로 일어났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세까지의 왕국에서 왕권을 둘러싼 혈육간 상극을 으레 그러려니 봐 넘기듯 재벌가 다툼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다. 재벌가들을 저마다의 크고 작은 왕국으로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예전의 왕권 쟁탈전이 피를 부르는 싸움으로 귀결되는 데 비하면 재벌 싸움은 적어도 피를 부르지는 않는다 싶지만 실상 그런 싸움 끝에 집안에서 아예 내쳐지거나 패배한 쪽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예도 있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왕권시대가 처음 탄생할 때는 나름대로 공동체의 생존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같은 시대에 재빨리 왕권강화로 나아가지 못한 부족연합 형태의 국가들이 먼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전례는 한국사에서도 찾아진다. 막강한 해상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가야의 경우 결국 6가야로 나뉘어 통일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해 강력한 왕권국가의 시대적 조류에 뒤쳐짐으로써 먼저 왕권국가 체제를 갖춘 신라에 복속된 경우가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이처럼 재벌의 탄생도 자본력이 부족한 후발 산업국가에서 경쟁력있는 기업을 탄생시키는 데 일정 정도 효과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재벌 탄생 역시 재화의 집중을 통해 국가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탄생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의 속도를 내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의 계산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시도가 한동안 국가경쟁력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모든 체제는 처음에 탄생의 이유가 있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라질 이유도 생겨난다. 새로운 산업국가의 등장으로 왕의 권력이 비대해져 더 이상 국가경쟁력을 키워갈 수 없는 단계에서 왕조시대가 후퇴하고 민주주의 체제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냈듯이.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이미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정치권력의 힘을 뛰어넘어 버린 재벌체제도 사라질 때가 된 것이다. 재벌의 존재가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재벌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논리에는 나름 타당성이 있지만 제왕적 재벌총수 일가의 기업 휘두르기가 종종 기업의 성장에도 장애를 일으키고 기업 종사자들은 그들 앞에 왕국의 신민처럼 굴종해야 하는 현실은 변화가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철에는 그런 재벌 개혁이 종종 이슈로 등장하지만 그 때뿐, 선거가 끝나고 나면 흐지부지되고 마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미 정치권력으로 변화를 꾀하기에는 재벌 집단들의 힘이 너무 커진 탓일 수도 있다.

그처럼 변화하지 못하는 재벌가에서 형제간에 상속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잦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른 그룹에 속한 기업을 흡수 합병하기 위한 싸움보다는 같은 그룹 내에서 더 자주 분쟁이 발생하는 것도 참으로 왕권다툼과 닮았다.

그런 형제간 싸움은 꼭 상속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상속 초기의 여러 복합적 원인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형의 고유 업종에 동생이 뛰어들어 형제간 발목잡기를 하거나 형제 회사의 지분을 잠식해 들어가며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심각한 관계로 발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1:1로만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형제가 많고 집안 혈족이 번다한 경우에는 집안 내 대규모 파벌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 밑으로 그룹 내의 추종하는 세력들이 붙어서 싸움이 끝났을 때는 피비린내가 진동할 듯 처참한 보복이 자행되기도 한다.

한국의 재벌, 그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 국가의 지원은 민초들의 피땀 어린 세금과 세계 최장시간 저임노동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그나마 경쟁력을 갖고 있던 시절에는 성장의 과실을 나눈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니 존재이유를 가졌다고 하겠다.

이제는 그런 존재이유도 사라진 그들의 왕국이 세간을 어지럽히는 권력다툼을 하도록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지를 국민들이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재벌이 망하면 기업도 망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국가권력에 의해 조성된 여론을 극복하고 현명한 눈으로 미래를 볼 국민의 지혜가 필요함을 이번에도 또 터진 재벌가 싸움이 반증해준 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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