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리콜소동 '어물쩡'넘어갈 일인가
화폐 리콜소동 '어물쩡'넘어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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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에 으레 1만 원 권으로 주던 세배돈을 올해 설날에는 때맞춰 나온 5천 원 신권 한 장으로 대체해도 엇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어 세배값 부담이 줄었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관심을 모았던 신권이다. 그 신권이 발행된 지 한달 남짓에 리콜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외국에서도 종종 있는 일인데 우리 국민이 지나치게 과민 반응한다고 조폐공사 관계자들이 볼 멘 소리를 한다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이번 5천 원 권 발행의 목적이 위폐방지에 있었고 당국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생각없는 불평처럼 들린다.

일반 제조품의 리콜도 아직은 충분히 낯을 익히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돈’을 리콜한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이다. 그것도 위폐방지를 위해 발행한 신권의 그 위폐방지용 홀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데 관계자들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반응한다면 일반 국민들로서는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 화가 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아직 사용되지 않고 한국은행에 남아있던 돈 1천680여만 장(840여억 원 상당)에 대해서만 리콜하겠다는 것이다. 그럼 시중에 나도는 잘못 제작된 5천 원 권은 그대로 위폐범들 앞에 노출돼도 괜찮다는 것인가.
 
홀로그램 없는 신권은 정교한 프린터로 얼마든지 복사 가능한 수준일 터인데 당초 범의가 없던 이들에게 범의를 부추기는 짓이 되는 것은 아닌가도 걱정스럽다.

현재 리콜하겠다는 그 액수만큼만 다시 찍자 해도 상당한 국가 예산이 낭비될 터이다. 따라서 국가 예산 낭비를 초래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옳다.
 
하지만 예산 낭비가 되더라도 위폐가 횡행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중에 나도는 홀로그램 부실한 5천원권을 지금 당장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폐 출현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언제고 다시 홀로그램 없는 신권이 장롱 속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 뒤를 위폐가 따라올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은행은 앞으로 발견될 불량 신권이 최대 40장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따라서 그 정도라면 전부 리콜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그러나 돈을 주고받는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전량 회수됐다고 확신할 수 없는 한 늘 찜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위험만으로도 5천원 신권이 화폐로서 신뢰를 상실할 위험은 충분하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뜻밖의 예산 낭비를 조금 줄여보겠다고 어정쩡한 리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그 후유증을 키우는 더욱 더 무책임한 태도가 될 수 있다.
 
화폐는 경제의 혈소판이다. 불량 혈소판은 전신 교체수혈을 감행해서라도 제거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돈’이 미덥지 않으면 한 사회의 신용이 흔들리고 결국 조직 전체를 불건강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 중에는 커다란 외부의 적보다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세균, 바이러스 등이 숫자도 더 많고 훨씬 더 치명적인 위험이 될 때가 많다.

이번 불량 신권 소동은 관계기관, 관계자들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 못지않게 숙련된 감식 인력이 부족했던 게 문제였던 듯하다.
 
한국은행과 조폐공사는 기계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지폐를 직원이 육안으로 재검사하는 과정에서 결함을 발견하지 못한 채 공급됐다며 육안검사의 오류를 주된 원인으로 밝혔다.
 
새로 도입된 제조기계와 검사기계의 안정성이 아직 낮아 불량률이 높다는 점은 한국은행의 주장처럼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불량으로 인식한 지폐를 육안검사에서 놓치고 지나갔다는 것은 육안검사 인력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전문인력 부족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숙련공이 될만하면 출국해야 하는 현행 산업연수생 제도에 불만을 늘어놓지만 그런 숙련공이나 각 분야 요소요소의 전문가들이 지닌 가치를 우리 사회는 너무 값싸게 여기고 있다.
 
이는 불량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말만으로 일류가 되고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당장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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