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하락의 빛과 그림자
환율하락의 빛과 그림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IMF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던 당시 해외유학생들의 귀국이 부쩍 늘었고 미처 귀국할 수 없었던 학생들 중에는 부모의 사업체 부도로 인해 여비를 마련할 방법도 없어 발만 굴러야 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었다. 환율이 달러 당 2천원에 근접할 만큼 급격히 오르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지금 환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1,030원대가 무너지고 일각에서는 연내에 1,000원선이 일시 붕괴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즈음, 국제경쟁력이 낮은 산업부문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행업계처럼 환율의 상대국들로부터 들어올 관광객 감소를 걱정하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해외 직수입이 많은 대형 유통업체나 식품업계 등은 수입상품의 매입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 마진이 커질 것을 기대하는 곳도 있다. 해외여행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곳들도 있고 해외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빛이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다는 말도 있듯이.

국가경영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마치 우산장사와 나막신장사 두 아들을 둔 부모 심정이 될 수도 있는 형편이다. 해외수출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우리의 역대 정부에서는 무조건 환율하락을 방어하기에 급급했지만 우리의 적정 환율에 대해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눈을 돌리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할 대기업들의 주요무대가 세계시장이다 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과거 우리의 환율을 다시 떠올려보면 이미 국가경제규모나 국제사회에서의 지위가 변한 것에 비해 현재의 환율은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즈음처럼 급격한 하락이 불러올 위험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언제까지나 환율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70년대 중반의 원`달러 환율은 900원을 밑돌 때도 있지 않았던가 싶다.

그때도 물론 환율하락을 위험신호로 받아들여 정부가 부산을 떨기도 했고 정부가 환율을 통제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도 환율인상으로 수출기업 사원들로부터 ‘월급쟁이들은 앉은 자리에서 고스란히 임금삭감을 당했다’고 투덜대던 소리들을 기억한다. 당시 정부도 환율을 더 끌어올리고 싶었을 테지만 그랬다가는 가뜩이나 높던 물가상승률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자제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지금의 정부 관료들도 그런 점에서 좀 더 정치적 감각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어렵다는 기업들의 목소리도 과장이 있지 않겠는가.

환율이 지금에 비하면 매우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 당시 우리나라는 수출규모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세계적으로도 경이로운 고속성장을 구가했었다. 단지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임가공업에서 간신히 경공업 단계로 올라섰던 시절에도 그런 낮을 환율로 경쟁해 살아남은 기업들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도 상품의 가격경쟁력 못지않게 품질경쟁력으로 승부할 만큼 성장한 터에 환율하락을 못 견딜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환율하락을 방어하겠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의 적정환율을 제대로 산출하고 그 마지노선까지 환율이 하락하는 것을 허락하되 단지 요즘처럼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기업경영의 위험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관리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지금 한국정부가 그런 능력이 없다고 단정하고 보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배워온 것이 환율관리기술인데 그걸 못해낼 리는 없다고 본다.

다만 정치권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해서 정책을 펼칠 시기를 놓치거나 안일한 자세로 국제통화의 흐름과 상대국들의 정책이 불러올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요즘의 환율급락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의 추세를 부정하려 들기보다는 어떻게 안정적으로 하락을 관리해 나갈지에 경제부처의 의지가 모아져야지 괜스레 선거 앞둔 정치권의 호들갑에 놀아날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