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1번 찍으랬잖아'
'엄마가 1번 찍으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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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를 갖고도 십 수 년을 이 대학 저 대학 시간강사로 뛰어다니는 속칭 보따리 장사를 못 면하고 있는 후배와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 친구는 전반적인 선거 결과를 떠나서 일단 교육감 선거 결과에 매우 흡족해 하고 있었다. 보내는 문자에서 신명난 음성이 들리는 듯 싶을 만큼.

오로지 자본 효율성에만 천착해 사립학교 법인들의 반교육적 행태들을 변호하기에 급급해온 보수교육정책들에 넌덜머리를 냈을 그 후배의 입장이 떠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뿐만 아니라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고교생활에 혐오감을 느껴 자퇴하고 홈스쿨링 프로그램을 스스로 찾아 해내어 대학을 나오고 이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들까지 둔 그 후배 입장에서 이제까지의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남달랐으리라는 짐작이 더해지니 그의 환호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지방선거는 정치적으로는 균형을, 교육 측면에서는 진보를 택한 절묘한 유권자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눈에 띄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정치권은 정치적 이슈를 얻었을지 몰라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특별히 개인적인 연고관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상처를 끌어안았다. 따라서 올해 지방선거는 여느 때와 다르게 세월호라는 전국적 이슈에 정치권이 휘둘린 경향이 있었고 그 이슈는 정부를 코너로 몰고 갔다. 물론 막판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는 적어도 여야 어느 쪽도 긴장을 풀지 말라는 민심의 신호를 접수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유독 시도 교육감 선거 결과는 뚜렷한 시대적 변화 징후를 드러냈다.

물론 교육감 선거 결과를 두고 여기저기서 전문적 분석을 내세우며 여러 요인들을 들먹인다. 진보 후보들의 단일화 성공과 보수 후보들의 분열, 보수적인 노인세대에게는 낯설었던 선거 방식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있어서 이제까지의 교육정책은 더는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던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였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농약 급식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정몽준 후보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자기 자식 걱정만으로 휘말리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문제의식을 짚어보게 된다.

구조를 기다리며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지시에 맹목적으로 순종했던 착한 아이들의 떼죽음을 보며 숱한 부모들이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교육 철학이 깨져 버렸다. 그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아이, 단순히 지식만 주입시키는 기계로 취급되어 온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교육의 미래를 기존 방식과 제도에 믿고 맡길 수 없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동네에서 들은 얘기다. 마침 사전 선거 기간에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에게 세월호 참사 등을 얘기하며 이번에는 모조리 2번 찍자고 권했던 부모가 있었단다. 아마도 그 전 선거에서는 1번 찍으라 했었던 듯 이번 선거에 부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은 가서 모조리 1번을 찍고 나왔다고 했더란다. ‘엄마가 다 1번 찍으랬잖아’ 라며. 그제야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식을 잘못 키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지금의 20대 자녀들을 아무 생각 없는 아이들로 키워낸 어느 부모의 한탄이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교육의 필요를 부모들은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 주입됐던 기득권 보호를 위한 길 대신 새로운 길을 보여달라고 정치권에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직 이런 국민적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듯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집권당이든 야당이든 모두를 심판했다. 서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건 말건 국민들은 최선 대신 차선을 택했다. 아니 그보다는 최악을 피했다고 스스로 자평하는 소리들도 들린다. 선택이 아니라 피하고 걸러내다 남은 결과라는 한탄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숱하게 들어왔지만 우리 사회의 교육정책이 과연 그런 역할을 고민하고 마련되어 왔는지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고답적인 암기 학습만 시킨 것만 같은 조선시대의 교육조차도 사람다운 사람 만들기에 초점이 모아졌던 사실을 상기하면 지금 교육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음을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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