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와 민족주의
KT&G와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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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심심하면 한번씩 경영권 보호 논란이 터져나온다. 이 즈음에는 KT&G가 계속 화제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KT&G란 어떤 회사인가. 담배인삼공사라는 이름으로 국가 전매사업을 도맡아 하던, 따라서 그동안 누린 특혜로 국민 모두에게 고루 빚진 기업이라는 정도의 인식뿐인 기업이다. 더 보탠다면 어느 날부턴가 몇 푼 수출 길에 나서며 실없이 뜻도 알아보기 힘든 영문자를 이어붙인 간판을 내걸었다는 점 외에 웬만한 사람들에겐 이렇다할 추억거리도 없는 회사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 휩싸이는 과정에서 KT&G는 갑자기 기업 민영화 단계에서부터 소유 분산이 매우 잘 이루어졌고 그간 경영실적도 착실히 개선되던 그야말로 모범적인 기업이라는 칭찬을 듬뿍 들었다. 그런 기업이 갑자기 등장한 외국투기자본에 잡아먹히게 됐다고 야단들인 것이다.

논란을 초래한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소유 분산이 너무 잘 돼 있어서 투기자본이 쉽게 최대주주가 될 수 있고 따라서 경영권 방어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경영권은 누구의 권리이고 무엇을 위한 권력인가.

지난번 SK 사태 때 처음 들먹여지던 백기사 출현 여부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지만 과연 누구의 무슨 권리를 방어한다는 것인지가 매우 막연해 보인다. 단지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쉽게 갖도록 하는 것은 안 된다는 당위만 난무할 뿐 지켜야 할 주체와 대상이 모두 명확하질 못하다.

우리는 대우그룹이 몰락하는 과정을 정치적 시각에서 지켜본 기억이 아직 진하다. 그 당시 전도 유망한 국내 대기업들이 다 망하며 해외 마케팅 네트워크가 다 무너진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경영권은 이동했지만 그 기업들이 다 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영상태나 재무구조가 모두 양호해졌다. 해외 마케팅 망 역시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소량 지분으로 전횡하던 최대주주는 몰라도 다른 주주들로서는 손해 본 바 없지 않은가.

당시 몰락한 것은 재벌그룹이었지 그에 속한 기업들은 아니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둘째는 착실한 경영으로 사내 유보된 막대한 현금 혹은 환금성 높은 자산을 갖고 있어서 투기자본이 들어오면 그 자산만 손쉽게 챙기고 회사는 죽던 살던 내버리고 떠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얘기 들으면 누구라도 당장 제 주머니돈 털리는 섬뜩한 기분이 들게 돼 있다. 당연히 주기 싫은 돈이니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모범적 경영을 했다는 그 회사가 그토록 쉽게 현금화할 자산들을 많이 갖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기업 회계라는 게 원래 장부상의 수치만 오고 갈 뿐이지 실제 장기간 머무르는 돈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 아닌지 문외한으로서는 매우 의아하다.

회사 자본 전체에 맞먹을 정도의 자산이 언제든 현금화할 상태로 남아 있었다면 당연히 시설투자든 연구개발투자든 어딘가에 사용처를 먼저 잡아 썼어야 할 돈이 아니냐는 것이다.

월급쟁이 가계부 쓰는 것이라도 요즘은 재테크 개념 없이 현금보유만 늘리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한 자산관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KT&G 정도의 큰 기업이 그런 방식으로 자산 관리를 했다면 그건 뭔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단맛이 강하면 벌이 꼬인다. 투기자본을 불러들인 이유가 그런 높은 수준의 현금자산 보유에 있다면 결코 경영을 잘 한 것일 수 없다. 더욱이 꿀을 빨아먹겠다고 덤비는 꿀벌을 향해 비난하고 삿대질할 자격도 없다.

근래 들어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가 참 수난을 겪고 있다. 한쪽에서는 소수 재벌을 위한 방패로 동원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독재시절의 망령으로 치부되며 욕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그런데 민족주의를 희생제물로 삼는 그 양쪽 모두에게서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감성에 직접 호소하는 괴벨스적 수사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급하면 언제나 대중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슬쩍 빗겨가는 전략이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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