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모범생과 악마의 공존
선한 모범생과 악마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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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으려 갖가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세월호를 뛰어넘고자 했던 시중의 관심은 다시 군대 폭력문제로 이어져 경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워낙 그 잔인함이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여서 듣고도 쉽게 믿기질 않을 정도다.

그 뿐인가. 김해의 여고생 윤모양 살해사건 또한 그 잔인함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가 싶을 정도라는 생각을 아마도 많은 이들이 연이은 사건의 잔혹성에 할 말을 잊었으리라.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토록 잔인한 사회가 되었나 싶어 기가 막힌다.

마침 사망한 윤 일병이 이웃해 사는 조카와 고등학교 동창이어서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인 말로 듣고 있자니 언론을 통해서만 보던 것보다 더 생생하게 가슴 통증이 밀려든다. 세월호 때에도 그랬지만 윤일병이나 그 가족은 세상을, 사람을 잘 믿는 그저 흔히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선량한 모범생 가족이었다고 한다.

처음 윤일병 사망 소식을 군으로부터 들으면서도 부모들은 군이 그렇다 하니 그 설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죽은 아들과 함께 종교생활을 성실히 해온 부모들은 아들을 죽게 한 군에 대해서도 용서한다는 입장이었다 한다.

그런 부모들을 군은 기망하고 사건 내막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를 피워내며 마침내 그 실체를 하나하나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병든 부위가 서서히 그 썩는 냄새를 감출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좌는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는 나날이 잔혹한 일들이 늘어 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라는 태평한 생각에 젖어 살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사건의 뿌리는 오래전부터 서서히 자라났던 것이다. 사건이 터진 28사단만 해도 부대가 탄생한 이래 사건 사고가 참 많이도 일어난 곳인데 그런 문제가 제대로 파헤쳐지기도 전에 서둘러 봉합되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8사단은 우리 군 역사에 유일하게 사단장이 작전참모의 총에 맞아 숨진 기막힌 부대다. 그 자세한 내막이야 지금의 필자로서 잘 알 길이 없지만 권위적인 군대 문화가 그 어느 곳보다 심각한 곳이 아니었나 싶을 뿐이다. 무적태풍부대라는 명칭이 이런 군 문화를 바탕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박수를 보낼 수 없지 않은가.

전통이 반드시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듯 28사단은 그 외에도 김모 일병의 총기 난사 사건, 박모 이병의 총기 난사 사건 등이 잇달았다고 한다. 범인들이 다 일병, 이병이라는 사실이 그 부대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하게 해준다. 선임들의 후임병에 대한 가혹행위가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부대였구나 싶은. 사단 전통이 이렇다보니 아마도 육사 출신 장교들로서는 피하고 싶은 부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칫 군인으로서의 인생에 무덤이 될 수도 있는 부대이니까.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의무대만 해도 담당 장교의 계급이 직무에 합당한 계급이 아니라는 얘기가 들린다. 필자가 구체적으로 확인한 내용이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들리는 말처럼 대위가 맡아야 할 부대를 중위가 맡았다면 그 중위의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그 보다 훨씬 큰 책임을 군 인사시스템과 그 시스템 운용자들이 져야 마땅하다. 계급이 단순한 밥그릇 숫자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닐 테고 대위가 맡아야 할 부대였다면 경험 적은 중위가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것 아닌가.

군 출신 한 인사는 또 다른 견해를 밝힌다. 군 시스템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소규모 단위부대들이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못하는 상태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어 이번과 같은 사건 발생의 위험을 높여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은폐시키기에 급급했다.

감독도 제대로 못하고, 감독할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사건이 나면 일단 덮어버리는 일에만 신경 쓰는 군대로 강군이 되겠다? 지킬 의무가 있는 국민을 속이는 군대, 제대로 부대 통솔도 못해 사건 사고가 잇따르는 군대로 막상 전쟁이 나면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싶다. 내 국민은 지키고 적은 섬멸한다는 것이 군의 존재이유일 텐데 이건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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