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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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로벌화는 각종 사건, 사고에서도 나타나는 트렌드인가 싶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해도 소말리아에서는 반군들에 의해 배와 선원들이 납치되고 동경에서는 한국출신 소매치기가 황당한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터키에서는 배낭여행 중이던 젊은이가 뒤늦게 변사체로 발견되고 미국의 이민법 강화에 어림잡아 20만으로 추산되는 불법 한국 이민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그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한국인들이 개입되거나 얼결에 말려드는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이러니 수출로 일으킨 경제 시스템 하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늘 해외발 요인들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차라리 숙명이라 해야 옳을 듯하다. 그래서 대문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밥상머리에 붙어 앉아 숟가락 젓가락 놓는 것까지 참견한다.

당연히 한국의 기업들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한 체질개선이 필요해졌다. 헌데 그 출발점은 재벌체제 손질일 수밖에 없다 보니 정치적 공방으로 치달아 간다. 경제를 흔드는 사회 내부적 소용돌이도 결코 적다 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단번에 내리 누르는 것이 이즈음의 불안한 유가다.

모처럼 소비 경기가 살아나는가 싶었다. 그러더니 한순간에 유가가 치솟으며 불안감의 방아쇠가 당겨진 듯하다. 그 모든 불안의 배후에는 직·간접적으로 미국이 관련돼 있음이 감지되는데 그동안 열심히 미국 뒤쫒아 가던 우리는 이럴 때 지붕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가 되곤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미국이 핵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주요 산유국 이란발 유가 불안을 야기시킨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 뒤를 아프리카가 잇는다.

복잡한 갈래의 종족들이 외부 세력의 대리전을 치르는 ‘무늬만 내전’이 흔한 아프리카다. 그 중 산유국이자 아프리카 안과 밖을 잇는 주 통로인 나이지리아의 정정이 부쩍 불안해지며 유가를 쏘아 올린다. 정부군, 반군이 모두 동일한 무기로 싸우는 아프리카의 비극에 세계 최대 무기생산국이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중동과 아프리카에 이어 이번에는 중남미가 또 우리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미국 자본으로 황폐화되는 경제의 대안으로 근래 잇달아 좌파정권이 집권에 성공하고 있는 중남미다. 그 중 대표적인 산유국에서 유전 국유화 조치의 첫걸음을 떼는 모양이다. 당장 새로 개발될 유전에 투자자로 나서려던 대한석유공사는 해당국 정부가 지분 60%를 요구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적은 지분을 갖고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휩싸인 듯하다. 애초 14% 밖에 안되던 지분이 반토막 이하로 떨어지니 망설여질 만하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석유 한방울 안 나오는 나라’를 되뇌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엄연한 산유국의 일원이다. 물론 국토 안에 개발된 유전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세계 여러 지역 유전에 조금씩 지분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지분이야 보잘것없지만 새로 개발되는 유전에 조금씩 투자한 게 그럭저럭 우리의 에너지 공급에 안정성을 높이는 큰 몫을 하고 있다. 가격에서 잇점이야 못 누리더라도 적어도 석유수급의 안정성만 확보돼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긍정적 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그렇게 아프리카로, 중남미로, 신규 개발 유전을 찾아 투자해온 우리의 에너지 공급 라인은 아직 크게 흔들릴 이유가 없지만 앞으로 새로운 유전 개발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계획에는 적잖은 난관이 뒤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중남미 다른 좌파정권들이 그런 좋은 사례를 간과할 리 없을 터이니.

미국식 모델이 우리보다 앞서 여러 가지 성공 사례들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자원과 무력까지 겸비한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를 부존자원 절대 부족에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일일이 눈치 봐야 하는 우리가 다 따라 쓰다가는 신용불량자 되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 처지는 모진 놈 옆에 있다 정 맞지 않게 거리 두기를 잘 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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