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임영록-이건호, 화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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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기자] 청조말 대표적인 기서(奇書) 가운데 '후흑학(厚黑學)'이라는 고전이 있다.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속마음'을 줄인 말로 당시에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현대 들어서는 원활한 경영 및 직장생활을 위한 처세술 정도로 재해석되고 있다.

최근 수개월째 답이 안보이는 KB금융지주의 CEO간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답답함이 치기어린 어린 아이의 떼쓰기로 보인다. 대한민국 대표 금융사의 CEO라는 명함 뒤에 숨겨진 민낯을 보는 듯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민망함을 감추기 어렵다.   

KB금융이 어떤 금융사인가. 총자산이 무려 400조원에 이르고 직원수만 2만5000에 달하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 금융그룹 중 하나다. 주력 계열사인 KB국민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고객 수만 3000만에 육박하는 말 그대로 '국민의 은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01년 舊주택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자타공인 '리딩뱅크'의 입지를 구축하며 승승장구, 10년 가까이 국내 금융시장의 금융리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랬던 KB금융이 이제는 금융시장의 '대표 문제아'로 낙인찍혀 안팎의 혹독한 비판과 시련에 직면해 있다.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기금 횡령, KB국민카드 개인정보 유출에 이어 CEO간 알력까지 어느것 하나 금융사로서 치명적이지 않은 사안이 없다.

여기에 최근에는 KB자산운용 전임 대표와 임직원 10여명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 선물 등을 매매한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돼 '날개없는 추락'이라는 혹평까지 받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의 제재발표를 기다려온 KB국민은행 노조는 급기야 임 회장과 이 행장을 싸잡아 출근저지 및 퇴진운동에 나섰다. 낙하산 인사라는 이유로 노조로부터 첫 출근을 제지당했던 두 CEO가 1년만에 당시 악몽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노조를 비롯해 금융권 안팎에서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부분은 임 회장과 이 행장 간 갈등이다. 이들 CEO간 갈등은 금감원의 제재 수위를 낮추기 위한 수차례의 소명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상대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수차례에 걸친 소명을 통해 물밑 공격과 방어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KB금융 안팎의 관심사는 오로지 '누가 살아남느냐'로 쏠렸고 임직원들의 치열한 줄서기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누가 자리에서 물러나든 회장-행장의 다툼에서 파생된 거센 후폭풍은 불보듯 뻔하다. 상황이 이쯤되니 내부에서는 관리 보고체계가 사실상 마비됐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보수적 조직문화와 함께 리스크 관리가 생명인 금융사로서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KB금융의 경우 지난 2008년 국민은행의 지주사 전환 이후 수차례 회장-행장간 세(勢) 싸움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이같은 갈등의 이면에는 '주인없는 은행'이라는 한계에 따른 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금융당국의 무책임한 행정이 遠因으로 작용했다. 이번 역시 금융당국의 징계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KB금융은 안으로부터 곪아가는 형국이다.  

물론 이들 CEO를 비롯해 일각에서는 KB금융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성장통' 쯤으로 해석하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경쟁사인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처럼 전통의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CEO간 갈등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이전 정권에서 제왕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경쟁사보다 더 나은, 새로운 리더십의 전형을 구축해나가기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부 갈등 해결을 위해 외부 권력을 동원하는 행태는 CEO가 갖춰야할 덕목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리더십 훼손의 역풍과 함께 극단적인 경우에는 조직분열까지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화일로에 있는 현 시점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진심어린 화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수만명의 직원과 수천만 고객의 우려섞인 목소리를 더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명백하다.

두 CEO간 불신의 깊이는 누구보다 본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도 다름 아닌 임 회장과 이 행장 자신들이다. 깊은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봉합돼야 아물 수 있다. KB금융 두 CEO가 후흑학의 지혜를 보여줄 때다.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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