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제일주의가 부른 참사
성장제일주의가 부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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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 국민의 의식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성장 구호에 거의 맹목적으로 호응하던 국민 의식이 복지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조사결과가 민간 차원의 조사가 아니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조사에서 나타났다는 점은 대단한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지난 대선 기간 중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공히 복지를 기치로 내걸었을 때부터 이미 복지확대에 대한 한국사회의 요구가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많은 이들이 막연히 잘 사는 나라가 단지 경제적 풍요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은 아닌가 싶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9.8%가 20~30년 후 희망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으로 ‘소득분배가 공평하고 빈부격차가 별로 없는 복지국가’를 꼽았다. 그것도 성별, 연령, 학력, 소득 등과는 무관하게 거의 모든 계층에서 30~40%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이념 성향으로 보면 보수 응답자(36.4%)보다는 진보 응답자(47.7%)의 지지가 높았지만 재미있는 현상은 매번 선거 때마다 보수의 본고장으로 지목돼온 대구`경북 지역 응답자의 선호 비율이 45.9%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역시 보수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부산`울산`경남도 42.6%, 강원`제주가 41.6%로 그 뒤를 잇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응답 결과는 과연 이들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이 얼마나 서로 닮았을 지에 대해 달리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복지국가의 모습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열어놓고 논의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모르긴 해도 아마 그 복지국가의 모습은 서로 매우 상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든 이런 조사를 통해 경제발전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11.6%)는 생각보다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국가모델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선진국(22.0%) 수요도 경제강국의 거의 2배에 달하고 있어 근래 정부의 경제강국 지향 정책에 문제제기를 충분히 하고 있다.

이번 조사의 목적이 국민대통합위의 하반기 역점사업인 ‘2014 국민대토론회’의 기초자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는 있겠으나 그동안 정치구호로만 머물던 ‘복지국가’를 구체화된 모델로 만들어 실현해나가려는 의지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갈등이라 해봐야 고작 노인들의 연금을 어떻게 하느냐는 수준 밖에 기억나지 않았던 복지 논쟁이었다면 이제는 진정으로 우리가 지향할 복지국가 모델에 대해 전사회적인 통합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 사회가 왜, 언제부터 이처럼 ‘복지’를 갈망하게 됐는지부터 매우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를 얘기하면 ‘좌익 빨갱이’로 몰아가던 사회의 급작스러운 방향선회가 어느 면에서는 꽤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 정부가 내용이야 어떻든 대통령선거 이슈로 ‘복지’를 써먹었으니 이제 그런 극단적 사회 분열 획책은 좀 사라져가지 싶다. 일단 좀 막연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요구의 방점이 성장보다 복지 쪽으로 찍혀가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 쯤 짚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우선 그동안의 성장수준에 만족해서라기보다는 계속 경제성장에 매진해봐야 개개인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못하고 어느 면에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자각이 커지면서 단순한 성장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들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기업이 출현했다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떠들지만 중산층은 나날이 무너져가고 열심히 일해 봐야 노년은 불안하기만 한 오늘날의 현실이 청년층은 물론 중`장년층들까지 우리 사회의 지향모델에 회의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 세월호 참사가 압축적으로 보여준 불안한 사회의 실체에도 정부는 여전히 무신경한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수면아래 감춰져 있던 군대내의 끔찍한 폭력문화들이 차례로 들춰지고 공단이나 대형공장들을 유치하며 지역발전을 꿈꿨던 지역들은 잇달아 터지는 유독가스 누출 등으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반으로 고루 퍼져나가지 못하는 사이에 병들었던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성장제일주의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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