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북 된 한국의 금융
동네 북 된 한국의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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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금융업계는 경영진의 개인비리로 골머리를 썩이는가 싶더니 금융 산업 성장이 지체되는 동안 세계 금융계에서의 순위는 크게 후퇴했다는 보고까지 터져 나왔다. 이래저래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한국의 금융 산업의 현실이 한국 경제의 모습을 되비치는 모양새여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학술적 용어를 빌리자면 한국 정부는 실상 금융억압정책(Financial Repression Policy)을 써가며 기업에 국가적 재원 몰아주기를 해놓고도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는 산업부문에 비하면 그래도 금융 산업은 나름 선방을 했다 싶지만 평가자들은 본시 냉혹한 법이니 동네 북 두드리듯 마구잡이로 두들겨댄다.

대기업, 재벌기업 등 개별 기업에 대해서는 대체로 매우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현실과는 상반되는 평가여서 그 불균형 정도가 심히 위태로워 보이지만. 실상 지금의 저금리 정책만 해도 시장수요와는 어긋나는 것으로 기업들이나 투기꾼들에게는 또 한 번 빚으로 큰 잔치판 벌여보라는 것이겠지만 금융 산업 입장에서 보자면 경영환경의 악화요인이 아니겠는가.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으로 평가되는 대기업 중심 수출주도 경제정책의 부작용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던 금융업계는 또 다시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나 다름없는 국면에 들어섰지만 금융권이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도 못되는 것 같아 안쓰럽다.

그래도 1금융권이야 어차피 국가 경제정책의 동반자로서 위험부담도 일정 정도는 나눠지고 가겠지만 시장수요에 맞춰 명멸해온 기타 금융부문들이나 그 소비자들은 김수영의 싯귀처럼 바람에 먼저 눕는 풀잎이 되어 그렇게 바람에 대비해나갈 수밖에 없을 터다.

불균형 정책이 만들어놓은 틈새, 틈새라기보다는 크레바스 같은 깊은 골을 메꾸며 서민들의 갈급한 금융수요를 채워주던 기타금융들은 이제까지도 정책당국에 의해 단지 불순한 범죄 집단과 다를 바 없이 취급당해오지 않았는가.

어떻든 정부 금융정책의 1차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1금융은 글로벌 경영을 지향한다고 기치를 내건지 십 수 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책에 의해 휘둘러지는 칼끝이 되어 국경을 쉬이 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정책에 순응하지 못하면 경영자의 목으로 칼끝이 날아가는 일도 흔한 터라 별달리 뛰어넘어볼 의지를 발현시키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그럴 법도 하다.

정부 하는 일이 꼭 다 큰 자식을 기어코 치마폭에 감싸 안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고 그래서 취업시험장에도 따라가고 취업후 직장생활 중의 갈등에도 개입하는 식의 병적인 과보호 모성을 보듯 한심스럽게 보인다.

한국이 그동안 이룩했다는 경제성장의 내막을 보면 죄다 그런 과보호 속에 길들여진 대기업과 재벌들을 양산했고 또 금융 산업의 성장도 지체시킨 기록의 연속인 것만 같다.

경제학자 폴 그루먼이 그랬다던가?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 덕분'이라고.

이 말 속에 한국 금융 산업의 어제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오늘도 포함돼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박정희 정권 시절 8.3 사채동결과 같은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기업에 자본을 쏟아부어주는 동안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채 특혜를 빨아먹는데 더 집중했다는 사실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런 편애의 부작용으로 초래된 도덕적 해이가 누적되면서 결국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외환위기의 주범이라고 지목한 전직 경제관료들의 주장 속에도 담겨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금융 산업 역시 외환위기 이후 투입된 막대한 공적자금 속에 안주하며 여전히 얼굴을 금융소비자 대신 정부를 향해 치켜들고 스스로의 살 길을 내맡겼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만 흉볼 처지는 아니지 싶다.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정부 정책에 변변한 어필조차 하지 못하는 현재의 형편이 되기까지 무조건 정부의 지시에 순응만 해온 금융인들 스스로의 책임도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금융 산업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정권 실세에 줄 대어 자리보전하기에 더 열과 성을 쏟은 이들이 경영진들 속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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