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KB금융 새 CEO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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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기자] "경쟁사이긴 하지만 동업자로서 KB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인력풀도 좁은데 굳이 국내에서 찾을 필요가 있나요? 불행한 과거를 제대로 털고 가려면 차라리 외국인 CEO를 영입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더 이상의 실패는 안되니까요"

지난 수개월간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KB사태' 이후 진행중인 차기 KB금융 회장과 KB국민은행장 인선과정을 지켜보는 한 시중은행 직원의 솔직한 관전평이다. KB금융 CEO 인선에 훈수를 두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그만큼 KB금융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헤드헌팅 전문사로부터 받은 명단이라고는 하지만 KB금융 이사회가 추린 회장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왜'와 '또'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KB사태의 주된 요인이 '낙하산 인사' 탓이라는 비난 여론 때문인지 내부출신들도 일부 포함됐지만 이 역시 '글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는 마찬가지다.
 
내부출신으로 분류된 김기홍 전 KB국민은행 부행장의 경우 수석부행장과 금융지주 설립추진단을 이끌었지만 이전 사외이사 시절을 포함해도 내부경험은 고작 4~5년에 불과하다. 학자 출신에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역임했다는 점에서 내부출신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의 경우 KB국민은행 재무본부장과 개인금융 부행장을 비롯해 KB금융 CFO까지 10년 가까운 내부 경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행시 출신으로 주로 회계법인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다.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도 국민은행 연구소장을 시작으로 10년 가까운 내부 경력을 갖고 있지만 조흥은행과 LG카드, 금융연구원 등을 두루 거쳤다. 정통 'KB맨'은 아니다.
 
내부 인사로 분류된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의외의 후보다. 황 전 회장의 경우 삼성그룹 각 금융계열사는 물론 우리은행장과 우리금융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난사람이다. 하지만 KB금융 회장 재직 당시 과거 우리은행장 시절 투자실패를 이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해임권고 조치를 받고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인 전력이 있다. 반복돼온 KB금융 경영불안의 시발점이 당시 '황영기 사태'였다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선듯 이해하기 어려운 인선이다. '오죽 사람이 없었으면'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지난 30여년간 국민은행에 몸담았던 김옥찬 전 KB국민은행 부행장의 경우 '정통 KB맨'이라는 점에서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내-외부 경쟁구도에 맥이 빠져버린 분위기다.
 
이 외에 양승우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대표와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그리고 뒤늦게 도전장을 내민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등은 '온전한' 외부 인사로 분류된다. 현재까지는 금융권 안팎의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면 외부인사가 KB금융 CEO로 선임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인재풀이 워낙 빈약해 '외부 회장-내부 행장' 구도로 새 경영진이 꾸려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이들 후보가 KB금융의 불행한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는 새 리더로서의 자격이 충분한가하는 점이다. 특정 후보의 경우 과거 몸담았던 금융사 직원들로부터 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데다 현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까닭에 금융공기업은 물론 경쟁사 CEO 선임 과정에서 단골 후보로 등장해 왔다.
 
일부 인사는 전무후무한 연임가도를 통해 금융권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외국계 금융그룹 계열사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경영능력을 완벽히 검증받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같은 이유에서인지 조직내 노사갈등도 매년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들 모두 CEO로서의 명백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한 KB금융의 과거사를 온전히 정리하고, 2만명이 넘는 거대 조직을 이끌수 있는 적임자라는 근거 또한 부족하다. 
 
이처럼 매번 동일한 인물이 하마평에 오르고 국내 금융시장에서 눈에 띄는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배경에는 이른바 '관치(官治)'로 점철된 한국의 금융사(史)가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KB금융은 유난히 외풍에 취약했다.  
 
그래서 아예 생각을 한번 넓혀 봄이 어떨지. 어차피 거장(巨匠)을 키울수 없는 토양이라면 차라리 외국인을 CEO로 앉혀 외풍을 차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게 낫다는 얘기를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정서적 거부감에 비용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애로사항이 있겠으나 KB금융은 물론 국내 금융사들의 고질병인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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