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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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석유 재고가 예상보다 많은 것으로 미 정부 당국이 발표하면서 국제 시세가 단숨에 2달러나 떨어져 마냥 오르기만 할 듯하던 유가의 상승세가 일단 한 풀 꺾였다. 그러나 공급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수그러든 기세가 한달을 넘기기 힘들 터이다. 세계적인 석유 공급불안을 야기시키며 그간 재고 부족인 듯 연막을 펴던 미국이 어쩐 일로 재고 증가 사실을 공표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 더욱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지난 주 중국의 금리는 감질나게 올랐지만 당일 국내 증시는 상승세가 순식간에 꺾이며 큰 폭의 하락을 했다. 국내 금리도 또 한번 인상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틈에 중국의 금리 인상 소식이 전해져 다시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달러 환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그에 따라 한국 원화는 가만히 앉아서 가치가 높아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02년 이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무려 36.6%나 절상됐다고 한다.

달러 값만 떨어져 이런 현상이 오는 것이라면 걱정은 한결 덜어진다. 그러나 같은 기간 엔화 대비 원화 가치 또한 25.4%나 절상됐다니 환율 정책에 무언가 구멍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

그런 외생변수들이 줄을 잇고 있는 와중에 세계적 브랜드로 자란 국내 1, 2위 재벌들이 차례로 검찰 조사 대상이 돼 글로벌 경쟁력에 크게 흠집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게 만든다.

다른 한 편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 자본들이 큰 몫을 챙기고 떠나려 하는 데 세금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우리의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뒤늦은 법석이 일고 있다. 정부의 허술함만 문제도 아닌 것이 유통업체 까르프는 국내 영업부진 때문에 판을 거두려다 국내 자본들이 한꺼번에 군침 흘리며 덤벼들자 한 몫 챙기는 쪽으로 자세 전환해 몸값을 거뜬히 올려놨다.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야 외국 자본이든 국내 자본이든 나 아닌 것은 모두 남일 터이니 관심 밖이겠으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형제끼리 경쟁하느라 집안 재산 남의 자식에게 다 퍼주는 꼴 보는 부모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형제끼리 손잡고 함께 외국 자본이 가진 기업을 사놓고 나서 내 집안 것 된 다음에 경쟁하면 안되나 싶지만 실상 개방된 경제 시스템에서, 그리고 공정 경쟁의 원칙을 지켜가는 마당에 가능한 바람이 아닐 터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부진 걱정에 요란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입 업체나 현지 투자기업 등 유리해지는 부문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게 이즈음 우리 경제 현실이다. 외국의 금리 오르고 내리는 것이 내국인들의 해외 투자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할 만큼 우리 경제도 다면화돼 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 들어와 단기간에 크게 벌고 빠져 나가려는 외국 자본들에게 괘씸한 생각만 갖고 과도하게 사후약방문을 내려 들다가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시장으로 낙인 찍혀버릴 위험도 커진다.

론스타가 됐든 까르프가 됐든 그들의 행태가 불쾌하고 그들이 거둬가는 수익이 아깝기 그지없더라도 괘씸죄로 그들을 과도하게 압박할 일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을 때 해외로부터 긴급 수혈된 투자 자금들이 그 성격이야 구구각각이었지만 우리 경제를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게 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괘씸한 기분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일이 더 긴요할 수도 있다. 이미 잃어버린 송아지에 집착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늦었지만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를 기를 것이라면 잃어버린 송아지를 교훈 삼아 튼튼하게 외양간을 고치는 일에 더 마음을 써야 한다. 만만하게 당하는 일은 한번으로 족하니까.

그렇다고 바닥을 쓸고 지나간 송아지 목줄의 자국이 보이는 데 쫒아가지 말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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