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전면에 나선지 6개월째를 지나고 있다. 지난 5월10일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레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경영공백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부회장이 그룹의 굵직한 현안을 무리없이 소화해내며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의 공백기이자 이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난 6개월간 크고 작은 현안이 있었지만, 크게 △동분서주(東奔西走) △결자해지(結者解之) △괄목상대(刮目相對)로 요약된다.
◇동분서주(東奔西走) : 시진핑 주석부터 팀 쿡 애플 CEO까지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지난 7월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을 시작으로 수많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남을 이어왔다. 경쟁사 애플의 팀 쿡 CEO는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만 3차례 만남을 가졌다. 시 주석 외에도 후춘화 관둥성 당 서기 등 중국정부 고위 관료들과 만남도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외에도 스마트폰 등 여러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중국 고위관료들과 만난 것 역시 현지 시장에서 더욱 큰 사업적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다양한 글로벌 IT 기업 CEO들과도 만남을 이어갔다. 지난 9월 방한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역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직접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찾았다.
응웬 푸 쫑 베트남 최고지도자(당 서기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찾기도 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베트남의 공고한 협력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 1주년…'반올림' 협상은 아쉬워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함과 동시에 삼성그룹은 해묵은 과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앞서 삼성이 그룹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먼저 해결점을 찾은 쪽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다. 지회는 삼성전자 제품의 애프터서비스(A/S)를 담당하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들로 이뤄진 조직으로, 지난해 7월부터 1년 동안 임금 등을 놓고 투쟁해오다 올해 노사 합의에 이르렀다.
이들은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약 41일 동안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측에 협상에 대한 권한을 일임하고 지켜보다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직접 협상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삼성그룹도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해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인정하고 노사합의에 이른 것은 그룹 내 계열사뿐만 아니라 협력사까지 고수해오던 무노조 경영 원칙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 업계에선 "원청이 삼성전자서비스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직업병 문제는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와 구체적인 논의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반도체 사업장의 직업병 문제는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황상기 협상단장의 딸 故 황유미씨의 죽음 후 촉발됐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대표이사)이 직접 나서 발병자들에 공식 사과했다. 무려 7년을 끌어온 백혈병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삼성이 직접 나서 대화의 물꼬를 튼 점이 주목할 만하다.
다만 협상 중 반올림에서 분리된 피해 가족들이 삼성직업병 가대위를 따로 구성해 일부 난항을 겪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반올림에서 분리된 피해가족들이 따로 삼성전자와 협상테이블을 꾸리면서 반올림은 현재 협상에서 이탈한 상태다.
한편, 일각에선 삼성이 노조 문제를 해결하고 반올림과 협상에 나선 배경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내놓은 바 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 중국·인도 스마트폰 '대약진'…갤럭시 재정비 돌입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와 3분기 최대 수익원이었던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에 빠지며 전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중국에서 현지업체인 샤오미에 밀린 것이 뼈아팠다. 美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샤오미는 올 3분기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5.4%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13.5%로 2위로 밀렸다.
스마트폰만 비교하면 샤오미의 시장점유율이 16.2%,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13.3%다. 샤오미가 피처폰을 만들지 않는 스마트폰 전문회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스마트폰 부문에서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19%, 2분기 14.3%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 13.3%로 점차 떨어지는 추세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두 자릿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중국 업체에 밀린 이유에 대해 "프리미엄에서 보급형으로 이동하는 시장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결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출시한 '갤럭시S5'가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낸 것도 같은 이유다.
이에 삼성전자는 이달 초 공개한 메탈 스마트폰 '갤럭시 A3'와 '갤럭시 A5' 등을 필두로 중국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로 프리미엄 라인을 전개하고 다양한 보급형 모델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한편, 오는 14일에는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 막바지에 해당하는 삼성SDS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SDS 보유 주식은 11.25%로 이번 상장으로 거둘 차익 추정치만 수조원대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여기서 얻은 차익으로 향후 상속세 납부 등에 쓰일 '실탄'을 마련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