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금융당국의 KB금융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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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기자] 금융시장에서 절대적인 '갑(甲)'이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영문 명칭은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FSS).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금융감독 및 관리업무의 '서비스' 기관이라 하겠다.

또 금융정책에 대한 재개정 및 검사 및 제재와 관련된 주요 사항을 처리하는 금융위원회의 영문 명칭은 Financial Services Commission(FSC). 현재는 금융감독원의 상급기관이지만 지난 2008년까지 두 기관은 '금융감독위원회'라는 한 몸통으로 움직였다.

이른바 '금융검찰'로 군림하며 때에 따라 국내 금융사들의 목줄을 죄고 손발을 잘라버리기도 하는 이들 금융당국이 한 때는 말 그대로 '서비스 기관' 임을 자처할 때가 있었다. 국내 금융사 모두가 우리의 고객들이라며 금융시장의 '머슴'처럼 부려달라는 말이 금융당국 수장의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그 같은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금융당국의 칼날이 매서워졌지만 이는 불과 5~6년 전 얘기다. 국내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파산선고를 받고 이후 개인정보 유출과 동양, 그리고 'KB사태'를 거치면서 금감원의 칼날은 날로 날카로워졌다.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안팎의 비난 여론이 서슬퍼런 칼날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사실 금융감독당국의 권한 강화는 비단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사태에서 촉발된 소비자 보호 움직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산됐다. 감독당국의 권한 강화가 곧 소비자 보호라는 인식 하에서 출발한 일종의 트렌드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기관의 권력 집중과 피감기관의 자율성 침해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무소불위(無所不爲)'라는 단어가 감독당국의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크고 작은 금융사고를 돌이켜보면 큰 틀에서의 이런 흐름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KB금융지주의 LIG손보 인수승인 건을 놓고 벌이는 당국과 민간 금융사의 신경전을 지켜보고 있자니 금융당국이 '나가도 너무 나간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금융시장 발전을 뒷받침하는 서비스 기관임을 자처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찾을 길이 없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행정소송까지 들먹이며 금융당국에 날을 세웠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신임 회장이 내정됐지만,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는 LIG손보 인수승인 건은 당국의 논의 대상에서 아예 배제돼 있는 듯하다.

당국은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KB금융의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하며 이사회의 퇴진을 우회적으로 압박해 왔다. 엊그제 사외이사들의 자기권력화를 막고자 도입을 추진 중이라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안 역시 KB금융 이사회를 겨냥한 압박용 카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간 '끈 없는 내부출신 회장'의 보호막이를 자처하며 '버티기'로 일관해온 이경재 KB금융 이사회 의장이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 당일 결국 사의를 표명하면서 양측의 신경전은 일단락된 모양새다. KB금융과 이사회가 한시가 급한 LIG손보 인수를 위해 이사회 의장의 자진사퇴를 '제물'로 받쳤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뚜렷한 이유 없이 LIG손보 인수 승인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것처럼 비쳐진다. 과거 전례를 찾아보기 드믄 일인데도 말이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급기야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윤종규 회장 내정자가 당국이 암암리에 밀었던 인물이 아닌 만큼 이사회에 대한 '괘씸죄' 적용과 함께 '윤종규 길들이기' 차원의 복수극이 자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그것이다.

물론 이 같은 음모론은 금융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위여부를  떠나 금융당국은 이제 사정의 칼을 거둬들이고 본연의 업무인 '서비스'에 역점을 둬야할 때가 됐다. KB금융의 LIG손보 인수 승인이 늦춰지면 질수록 엄청난 액수의 이자부담은 물론 경영공백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 와해가 목적이 아니라면, 지배구조가 문제의 본질이라면, 이미 지배구조개편안을 꺼내든 상황인 만큼 두 가지 사안을 병행하면 될 일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LIG손보의 인수 여부에 대한 결론이 연내 나오지 않아 딜이 무산되거나 KB금융이 인수를 포기하는 사태로 이어진다면, 금융당국으로서도 난처한 국면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음모론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함께 민간 금융사가 입은 유무형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융위 또한 이른바 'KB사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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