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원인 중엔 직장 문화도 한몫
저출산 원인 중엔 직장 문화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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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란 ‘사실’이면서도 종종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이곤 하는 꽤는 위험한 상징이다. 최근 모처럼의 여초(女超) 현상을 보였다는 신문기사 제목만 보면 신생아 중 여자 아기들의 탄생이 늘었나 싶지만 내용적으로 그런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것은 없었다. 단지 전체 인구 중 여자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이고 이는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남성보다 장수하는 여자 노인들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로만 읽힌다.

이즈음의 빠른 노령화 진행 속도와 관련해 경제적 위험을 경고하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린다. 그런데 노령화 사회로의 빠른 이행이 몰고 오는 변화는 경제적인 부분만은 아니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변화가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일 수도 있다.

80년대보다 덜 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선호는 사라지지 않았고 소수만 낳는 풍토는 더더욱 딸의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을 부추기는 성싶다. 덕분에 소위 순혈주의로 불리는 배타적 혈연사회가 외국인 신부들을 대거 불러들이며 삽시간에 혼혈사회로 이동해가고 있다.

혈통에서도 개방적 사회로 나아가는 일 자체는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다보니 가뜩이나 희미해져가는 사회적 정체성이 더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된다. 게다가 외국인과의 국제결혼 증가는 개방사회가 필연적으로 수용해야 할 사회진화의 과정일수도 있지만 일방적인 신부 수입(?)의 착취적 구조가 고착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일 수 없다.

경제적 미래에 대한 염려를 떠나 사회문화적 발전 측면에서도 결국 우리사회의 정상적인 출산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자면 국가 사회가 자녀 출산 기피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데 현재 거론되는 이유들이 젊은이들의 현실과는 꽤 차이가 있는 듯하다.

젊은이들은 왜 아이 낳기를 기피할까. 아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만큼 아기들에게 열광하는 세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방송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아기나 주변 아기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갖고 반응한다. 앞선 세대들의 경우 대개 자신과 혈연적 관련이 있는 아기들이 아니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모든 아기들에게 친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기들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해서보다 크게 배려한다.

그런 젊은이들이 아이를 안 낳는다고 온 사회가 걱정한다. 젊은 세대가 태어날 아기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의미일 성싶다.

그 책임에는 경제적인 책임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경제적 불안이 큰 이유이기야 하겠지만 그보다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못 견디는 젊은 세대들이 두려워하는 것에는 아기와 나눌 시간의 부족도 포함돼 있다.

실질적 근무시간이 매우 긴 한 젊은 직장여성은 현재 매스컴에서 거론하는 출산율 저하 원인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출근시간은 있고 퇴근시간은 없이 지내는 자신과 같은 직장인이 결코 적지 않은데 그들은 그 어떤 다른 이유보다 바로 근무여건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와 눈 맞출 시간도 없이 단지 먹이고 입힐 비용만 대는 식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낳지 않는 게 옳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녀는 또 말한다. 직장의 ‘일’에는 단지 비즈니스 업무만 있는 게 아니라 '폭력적인' 회식문화도 포함돼 있다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정생활에 쓸 절대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이 낳기는 불가능하다는 그녀는 직장 문화가 그 개인들의 시간을 너무 뺏는다고 비판한다.

공식적인 근무여건에도 들지 않는 그런 직장문화는 지금 정부가 마련하는 직접적인 출산 대책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따라서 정책이 출산율 저하를 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물론 프랑스의 경험은 정부의 지원책이 단시일 내에 출산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와 한국의 직장 문화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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