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탈감이 키운 연말정산 소동
박탈감이 키운 연말정산 소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청와대나 정부 관료들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답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잘 하자고 하는 일마다 소동이 일어나고 대통령 지지율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집권 초부터 40%대를, 그것도 50%에 육박하는 높은 수준의 충성스럽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지지층을 자랑하던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46%를 넘던 지지율이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강조한 연두기자회견 이후 30%대로 떨어지더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파동과 연말정산 소동까지 잇따른 악재로 30%대마저 위협받는 지경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올해 들어 무려 13%p나 지지율이 추락했다니 법치를 그토록 외쳐온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연말정산 소급적용이라는 쉽지 않은 카드까지 뽑아들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그러나 연말정산 소급적용이 일시적으로 배신감을 느꼈을 지지층은 어떻게 수습해 끌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현시키기에 난관이 한둘이 아닐 터이니 잃어버린 지지층 모두를 흡수하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물론 그동안 정치적 난관을 돌파해온 박근혜식 정치 방식이 또 어떻게 실수를 상대진영으로 떠넘겨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번번이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야당 하나도 벅찬 현재의 집권세력들로서는 이 기회에 아예 야당을 더욱 초토화시켜 영구집권당의 꿈을 이루고자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무리수를 두기에는 이미 지지층들조차 지쳐버려 기대효과를 노리기에 한계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연말정산 소동은 실상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의 과실을 솔직히 시인할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능력도 안 되는 상태에서 약속된 정책을 포장이나마 그럴싸하게 끌고 가려 하다 보니 터져 나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 기조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성장만을 추구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게다가 지금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든 상태다.

지금부터의 각국 정부가 경쟁해야 할 바는 고속성장의 단맛을 빨리 포기하고 안정화 단계로 접어든 세계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장기레이스를 펼치기 위한 구조개혁이다. 그리고 그런 구조개혁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수용하며 고통을 분담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설득하는 인식개조의 노력일 것이다.

국민들의 자발적 고통분담 노력 없이 일방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할 경우 정치적 불안이 증대할 수 있으니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터다.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돼 있던 유럽조차도 지금 사회적 불안이 커져가고 그로 인해 사회적 기층을 이루고 있는 이민자 가정의 어린 자녀들이 테러조직을 따라 나서기 시작한 게 아닌가.

이번에 한국에서도 IS조직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이는 17세 소년의 등장해 사회적 충격이 크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는 그 소년의 행동마저도 영웅시하는 청소년들이 적잖다고 하니 이런 걸 우리는 한국사회의 글로벌화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인가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떻든 이런 현상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사회적 부적응자를 양산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다수의 기층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키워줬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만큼 기층 가정의 청소년들일수록 더욱 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힘든 시대인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저성장시대 진입에 따른 고통분담의 필요성을 국민들이 인정하고 수용하려면 다수가 소수를 향해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 특히 청소년들이 가장 민감하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여전히 경제개발 초기에 머물러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져 감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 돈만 더 풀면 된다는 식이다.

펌프의 물이 말랐을 때는 물을 한꺼번에 부어주면서 바닥의 물을 끌어올리는 게 효과가 있지만 지금 한국의 가진 자들의 펌프에는 물이 차 있다. 단지 펌프질을 하지 않을 뿐.

약과 독은 하나라는 말이 있다. 쓸 때를 잘 가리면 약이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