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현업 복귀…임영록 '무혐의'
"무원칙·무리한 제재" 당국에 화살
[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역대 CEO들의 잇단 제재로 '불명예 퇴진의 무덤'이라 불렸던 KB금융지주를 둘러싸고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과거 금융당국의 사퇴압박으로 물러났던 전임 회장들이 잇따라 명예회복에 나서면서, 비난의 화살이 금융당국을 향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이 행정소송을 거쳐 2013년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을 뒤집은 데 이어, 지난해 'KB사태'로 중도 사퇴했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도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KB의 새로운 수장에 오른 윤종규 현 회장과 고(故) 김정태 전 KB국민은행장도 최근 KB국민은행이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며 징계 전력을 씻을 수 있게 됐다.
우선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최근 신임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현업에 복귀했다. 황 전 회장이 금융권에 다시 돌아온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5년여만이다. 2009년 당시 황 전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 재임 시절 신용파생상품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으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3개월 직무정지'를 받았다.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으로 인해 황 전 회장은 퇴임 수순을 밟았지만, 당국의 징계 내용에 불복해 3년에 걸친 법적 공방을 벌인 끝에 승소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과도한 제재를 내렸더라도, 황 전 회장의 경우처럼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승소에 이어 당사자가 현업 복귀까지 했으니 당국으로서도 난감한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당국 징계 이후 수차례 억울함을 호소했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도 최근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검찰은 KB 사태 이후 당국의 고발로 납품비리 의혹 수사를 벌였지만, 임 전 회장에게서는 부정 등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임 전 회장이 중징계(직무정지 3개월)를 받을 만큼의 과실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당국은 행정법상 판단과 형법상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시 중징계 결론이 났던 것은 사태가 그만큼 진전되기까지 CEO로서 관리감독이 부실했다는 이유가 컸다"며 "검찰에서 무혐의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당국이 제재를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임 전 회장은 사퇴 직전까지 당국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KB금융 이사회가 해임안을 의결하자 징계 소송을 취소하고 즉각 사퇴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사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과거 징계 사실이 번복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검찰 조사 결과로 일정 부분 무고함이 증명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윤종규 현 KB금융 회장도 지난 2004년 KB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합병할 당시 법인세를 적게 내기 위해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재무담당 부행장이었던 윤 회장과 함께 김정태 전 행장도 함께 제재받았다.
하지만 최근 KB국민은행이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대법원이 당국의 판단을 뒤집은 셈이 됐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시 연임이 예상됐던 김 전 행장의 행보를 막으려는 조치였다는 추측까지 나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여론의 추이에 따라 제재를 과도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만 최근 금감원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예전처럼 제재권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금융사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