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이전의 자유는 꿈인가
거주이전의 자유는 꿈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연 초부터 전세가가 들썩인다. 벌써 전세대란이라는 얘기가 언론에 떠오른다. 1월 셋째 주의 전세가가 지난해 전세대란을 치른 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는 보도다.

전세보다 적은 보증금에 대신 일부 월세를 내는 전월세도 보증금은 안 오르는 대신 월세가 대폭 오르는 추세라고 한다. 전세를 전월세 혹은 월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들은 나날이 늘고 어쩌다 나오는 전세 매물들은 거액의 대출을 끼고 있는 위험한 물건들이 많아서 세입자들의 이주도 어렵게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재개발 규제가 대폭 풀리는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런 바람이 자칫 저가 아파트 지역까지 번져나갈 가능성도 커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세대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고 보면 불안한 주거환경 문제가 점점 깊은 골로 빠져드는 듯하다.

아버지의 직업 탓에 잦은 이사로 어린 시절의 친구를 갖지 못한 필자로서는 세입자들의 시름 못지않게 그들 자녀들의 스트레스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같은 동네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끝내는 지역적으로 더 싼 곳을 찾아 이주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니 아이들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은 일일 터다.

전세가가 오르면 가구 수에 비해 좁은 집일망정 내 집을 갖자는 욕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남매를 둔 가정이라면 최소한 방 3개 이상은 필요하다. 무작정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정부 기준 중산층에 턱걸이라도 한 가구에 한한 일이 아닐까 싶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젊은 부부가 눈치 환한 어린이, 청소년 자녀들과 한방에서 기거하는 서민 가구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자녀 낳기 운동을 벌이던 시절에는 방 2칸짜리 서민주택들로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정부는 다자녀 출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작은 아파트들은 기본 방 2칸이다. 주택정책과 출산정책 등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숫자놀음에 빠져 있던 결과가 오늘날과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낳았을 수도 있다.

정부의 다자녀 출산정책이 가난한 서민들 대상이 아니라 적어도 주거환경 제대로 갖춘 중산층 이상을 겨냥한 것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불행하게도 중산층에서 더욱 더 출산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해 보이니 문제다.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일에 매달려 사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데 낳아만 놓으면 정부가 키워주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 출산의 꿈은 자꾸 뒤로 밀리고 있다. 직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가임기 여성들이 결혼까지는 하지만 섣불리 출산을 결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금의 직장 문화가 개개인의 사적 삶을 부차적인 것인 양 취급하다보니 출산을 한 여성들은 스스로를 ‘나는 생모일 뿐’이라고 자조하는 소리도 터져 나온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제대로 지켜보며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시간이 없다는 하소연인 것이다.

이런 마당이니 주거환경마저 불안정하다면 아예 출산의 꿈은 접어버리는 일도 벌어진다. 예전처럼 자녀가 노후 보험 구실을 하는 시대도 아니다보니 꼭 자녀를 낳아야겠다는 의지 자체가 박약한 탓도 있지만 사회적 변화가 워낙 빠르다보니 단 몇 개월의 휴가로 인한 공백만으로도 불안감에 휩싸이기 쉽다.

임신하고 일하다가 출산하고 몇 달 휴가를 마치면 다시 일하러 나가는 길에 발걸음도 무겁기 마련이다. 그런데 막상 직장에 복귀하고 보면 전에 하던 일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 손에 넘어가 있고 새로운 일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뛰어야 한다면 아이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출산 전에 내 집이라도 장만하고 시간 여유를 가질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부부 합산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는 부부들마저 처음 전세로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내 집 마련에 성공하기는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전세가가 다시 춤추고 있다. 집값 문제는 그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책 당국자들은 얼마나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고 있을지 갈수록 더 미덥지 못하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