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가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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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말이 많았던 ‘증세 없는 복지’ 기조가 연말정산 파동을 겪으며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증세는 없다고 못 박았던 정부의 약속이 2년도 안 돼 깨졌으니 비판이 들끓는 것은 당연하다.

애초 증세 없는 복지 공약 자체가 환상이었으니 깨질 수밖에 없었다. 환상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는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막바지 시점에 이르렀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다보면 집권기간 내내 ‘꿩도 구럭도 다 놓치는’ 꼴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당까지 나서서 재검토를 요구하며 멍석을 깔아주고 있으니 정부로서도 이미 충분히 실추된 신뢰도에 더 이상의 상처를 줄이며 새로운 노선으로 갈아탈 여건은 마련된 셈이다. 당내의 반론조차 개인적 공격으로만 받아들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방식에 전환만 가져온다면 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말이다.

문제는 복지를 우선할 것인지, 증세불가 원칙을 우선할 것인지를 둔 선택이다. 과연 이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쪽이라도 집권당에 상처가 없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상처를 입기 위한 차선의 선택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게 생겼다.

이 문제를 두고는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복지축소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남유럽이나 중남미와 같은 재정악화에 빠지지 않으려면 증세보다는 보편적 복지론에서 선별적 복지론으로 선회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역설한다. 반면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를 코앞에 두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복지지출과 국민부담 모두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사실을 들어 복지지출을 줄일 수는 없고 세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어느 쪽의 주장이 더 힘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정부의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이런 논쟁의 바탕에는 국가경쟁력의 바탕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어 정부 선택에 대해 미리 점쳐볼 여지가 생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확대된 복지지출 규모는 이미 정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당초 대선기간 중 세목 신설이나 세율의 상향조정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정비, 세출 구조조정 등만으로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장담했던 박근혜 정부였지만 그 어느 하나도 현재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지하경제 양성화 문제는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꾸준히 손보고 추진해봤지만 현재 한국이 금리왜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사회도 아니고 단지 신용도 낮은 개개인들의 사금융 이용이 사회적 문제를 낳는 수준이어서 복지재원 확보에 보탬이 될 만한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싶다. 물론 수면 아래 잠자고 있는 개인 자산들이 상당하리라는 예상들을 할 수는 있지만 정부의 서슬이 시퍼럴수록 그 돈들은 더 깊숙이 감춰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개인금고에 잠든 재화까지 어찌할 방법은 없으니 애초 큰 기대를 걸만한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과세 감면 정비 문제는 그동안 고작해야 연금보험 정도 손봤던가 싶지 이렇다 할 실적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노후 생계비로 기대하던 연금보험 손 봐 본댔자 박근혜 정부의 절대 지지층인 노인유권자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간 것이 아닐까 싶지만.

세출 구조조정 문제는 어떤 실적이 있었는지 기억나는 게 없으니 그만 넘기자. 그저 현재 보여주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에서 경제 문제에 대해 너무 순진한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이 일 뿐이다.

문제는 지금 보편적 복지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업 지원을 위한 재원을 먼저 복지로 전환하면 어떻겠느냐고 농담으로라도 말을 걸었다가는 뺨 맞기 딱 좋을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들은 기업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는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니까.

그런데 사회 기층이 무너지고 중산층이 주저앉으면 그 사회에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해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그 계층들이 안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비도 늘고 따라서 생산도 유통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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