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들, '이재용의 삼성' 관심
[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살아남은 자만이 미래를 논할 수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鳶)은 더 높게 뜰 수 있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불황을 체질강화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전한 신년사다. 삼성은 이처럼 위기를 만날 때마다 내부 결속력을 다지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오는 22일로 창립 77주년을 맞는 삼성은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삼성전자의 주력제품이자 세계 시장 1위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역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결과다.
삼성은 고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3월22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차리면서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삼성은 전자와 비료, 유통, 항공, 정밀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하며 국내 산업화를 이끌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당시 삼성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82년 반도체연구소를 건립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적자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PC 보급 열기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후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공격경영에 돌입했다. 신경영 선언 직전 삼성그룹의 매출은 38조였지만 3년 후인 1996년 72조까지 치솟았다. 연평균 17% 이상 성장세를 기록한 셈이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두 번째 도약은 물론 체질개선의 전환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건희 회장은 공격 경영으로 삼성 임직원들의 체질까지 변화시켰다.
1995년 구미 휴대폰 공장 운동장에서 벌어진 '불량제품 화형식'은 대표적인 공격 경영 사례로 손꼽힌다. 당시 삼성전자 휴대폰, 무선 전화기, TV 등 15만 대에 달하는 삼성 제품들이 불에 태워졌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500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이 사건은 삼성전자의 품질력을 끌어올린 전사적 계기로 평가 받는다.
삼성의 매출은 창업 30주년이었던 1968년 연간 220억원에 머물렀지만 1988년 20조원 돌파, 지난해 연말 300조원 대까지 성장했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독보적이다. 영국의 브랜드 평가기관인 브랜드파이낸스가 최근 발표한 '2015 글로벌 500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보다 4% 증가한 817억1600만 달러(약 89조9000억원)로 세계 2위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안팎에는 지금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갤럭시S6'와 '갤럭시S6 엣지'로 글로벌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고, 한화에 매각한 4개 계열사와 갈등도 원만히 봉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는 가시적인 경영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거대 삼성을 이끌만한 경영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뒤따르고 있다.
더욱이 삼성의 경영스타일은 오너가 큰 그림을 그리면 전문 경영인이 세부사항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이건희 회장이 10년 앞을 내다보고 그리던 큰 그림을 이제는 이재용 부회장이 도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도 최근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기업 인수합병(M&A)과 비용절감을 위한 조직 재정비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근 삼성전자가 브라질 프린터기 업체, 미국 루프페이 등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 한화와 '빅딜'을 성사시킨 것 역시 이 부회장의 의지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면서 삼성도 젊고 유연한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며 "지난해 부진했던 실적이 올해엔 어떻게 달라질지 세계 경제계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