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공포'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
'D의 공포'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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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경상수지는 3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간다는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 걱정이 크다. 소위 말하는 불황형 흑자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소비자 물가가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창현 전 금융연구원장 같은 이들이 아예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은행도 디플레이션과 싸우라고 주문하고 나설 만큼.

물론 현재의 디플레이션 우려 현상이 어쩌면 지나친 호들갑일 수도 있다. 국제 유가하락에 따른 물가 하락세로 인한 지수변동이 주요인인데다 아직은 자영업자들의 대량 몰락현상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기업들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어지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 우려를 단순한 기우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현재 다수 국민들의 소비여력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같은 재벌그룹들 간에도 30대 그룹 순익이 5년 만에 반 토막이 났는데 그나마 수익의 92%는 4대 그룹이 번 돈이라고 할 정도로 편중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다.

계층 간 소득격차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5천 몇 백 원하는 아르바이트 시급을 올리는 데도 경총이 반대하고 나서는 판인데 대기업 임원들 연봉은 같은 기업 내 직원 최저연봉에 비해서도 143배에 달한다니 갈수록 커지는 격차를 거듭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소득격차는 향후 총자산규모의 차이를 메꿀 수 없을 정도로 벌려놓을 것이 분명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격차가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서민들의 소비여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문제는 그래서 우리 경제가 현재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돌파구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데 있다. 소비여력이 딸리는 국민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내수시장은 더욱 경색될 수밖에 없고 기업은 더더욱 수출 쪽으로 힘을 쏟아야 하는 데 세계 시장의 여건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경제상황이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 전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황의 터널을 향해 가고 있다. 따라서 쉽사리 한국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 경제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 세계경제 순환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전망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내수 기반은 취약한 상태인데 대다수 국민들의 소비여력은 나날이 더 줄어들고 있다. 이게 디플레이션 우려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지만 이쪽에 신경 쓰는 정책은 아직 보이질 않는다.

세계 금융기구들조차 염려하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그동안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도 그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기에 요즘 시중의 관심을 모은 안심대출 같은 상품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마저 부처간 공명심 다툼인지, 소통부재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슷한 시기에 건설교통부도 비슷한 저금리 상품을 만들었다가 출시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1%대 수익공유형 모기지’ 상품이 향후 금리 인상시기를 감안할 때 정책금융으로서는 보다 안전한 상품일 테지만 금융당국이 내놓은 고정금리 상품에 비하면 수요자 니즈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은행 창구를 둘러봤더니 안심대출 신청자가 몰려 창구에서는 하루 상담자 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최소한 이 상품이 하우스푸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시키며 가계부채의 위험성도 줄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판국에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서민들에게 자꾸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도록 부추기는 일은 지금 시기적으로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부동산 시장 활성화로 경기지표라도 끌어올리겠다는 얕은 발상은 제발 그만 둬야 한다.

물론 전세가격 폭등현상도 심상치 않아 자칫 깡통전세들이 무더기로 쏟아질 위험도 있으니 정부로서는 이를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을 테지만 지금의 경제상황으로만 보자면 일단 소비여력이 점차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서민가계를 줄줄이 파탄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지금 빚내서 집사라고 부추길 일은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을 막고 생산 활동에도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임금구조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다. 더 많은 가계에 소비여력을 살릴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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