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개혁 소동의 저변
공무원연금개혁 소동의 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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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한국의 노인들 대다수는 가난하다. 험난한 시절을 견디며 길러낸 자식들 역시 쪼들린다. 그 자식들은 또 취업문턱에서 여전히 서성인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 끊어내야 세상이 모두 평화로워질까.

이번에 국회 처리가 무산된 공무원연금개혁안 소동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 중 하나인 노인의 가난을 너무 당연시한데서 출발한 것은 아닌가 싶어 그 해결을 지켜보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재정절감분 20%를 전환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인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실상 현재의 국민연금은 군인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에 비해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낮다. 따라서 형평성을 고려하면 당초 여야의 합의내용은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발끈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한마디 더 하고 나서자 여당은 여야 대표 합의문에 구체적 숫자를 명시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청와대 요구에 끌려갔다. 실무기구 합의문에는 포함된 숫자를 단지 대표 합의문에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깨트린 여당은 그런 것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청와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이 사적연금시장을 축소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또 꽤 웃기는 논리다. 국민연금을 내는 대다수 국민들이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 한다기보다 국가 사회적 강제에 의해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만치 대다수 국민들에게 사적연금은 먼 나라 얘기다. 사적연금을 드는 이들은 그나마 중산층 가운데서도 여유계층에 한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50%로 오른다고 사적연금을 드는 이들이 줄어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얘기다.

물론 청와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문제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한 다음에 국민여론을 들어가면서 하겠다는 논리를 폈지만 그게 여야가 모처럼만에 이룬 합의를 깨트리게 만들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가 자신이 제시한 시일내에 합의에 도달한 사실을 칭찬했다. 대통령의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것인지 드러낸 대목이다.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보던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이번 사단에서 드러난 정부의 발상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대신 사적연금 의존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노인세대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겠다는 발상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노인 자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빈곤문제다.

이런 노인 빈곤문제가 대물림되지 않으려면 공적연금이 강화돼야만 한다. 그런데 사적연금시장의 축소를 우려해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데 반대하면서 복지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노인 빈곤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뻔했던 이번 공무원연금개혁 여야합의안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로 무산됐다. 지금 같은 정부의 인식이 계속되는 한 국민연금의 실질적 수령액은 현재 노인 용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기초노령연금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염려하는 국가재정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같은 재원을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집행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국민 세금을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마땅하다.

서울이 빠르게 노령화사회에서 노령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발표도 나왔다. 아이 울음소리 듣기 어렵다는 얘기가 이제 농촌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취업장벽 앞에 주저앉아 꿈을 잃는 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간신히 취업을 하고 나서도 불안정한 일자리, 소득에 비해 아득히 높기만 한 집값 등으로 미래가 불안해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하고도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결혼까지의 고비를 겨우 넘겨도 지금의 가난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을 보며 그보다 나을 것 없는 자신들의 미래만을 본다면 과연 출산을 꿈꿀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날이 노인인구 비율은 높아지고 국가는 여전히 노인의 가난을 당연시하는 속에서 국가적 성장 동력도 줄어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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