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대출 검증의 책임
부실기업 대출 검증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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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다섯 달 가까이 끌어오던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의 피해에 따른 무역보험공사와 시중은행의 공방전이 일단 무역보험공사 측의 승리로 매듭지어졌다. 시중은행들이 법적 대응 검토에 착수했다니 이후 추이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대출 위험 여부에 대한 1차적 책임이 은행 측에 있는 것으로 결론 난 것이다.

그러나 국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법적 책임이 어떻게 지어지든 시중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나 양측 모두 사기대출의 책임을 모두 벗어날 일은 아니지 싶다.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책임 문제를 떠나서 선진금융, 글로벌 금융을 외쳐온 그간의 노력이 그토록 허술한 검증시스템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의 금융 감독 능력에도 의구심이 드는 사건이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 금융시스템의 검증 능력 전반에 걸친 검토와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벤처 신화로 소문났던 기업이라지만 내용을 제대로 살펴봤더라면 적어도 그런 거액을 날릴 위험까지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시중은행들이 줄줄이 엮인 사기대출 사건에서 오히려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은 재빨리 부실채권을 회수해 850억 원의 피해를 예방했다는 사실로 미뤄 봐도 피해은행들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3천억 원이 넘는 거액을 떼이게 된 시중은행들로서는 무역보험공사에 화가 날 만도 하지만 애초에 어떻게 알맹이 없는 기업에 그런 거액의 대출을 무신경하게 해줄 수 있었는지 소시민들 입장에서는 그저 의아할 뿐이다.

‘빌 게이츠가 격찬을 했다’거나 국내외 ‘언론에서 극찬을 했다’거나 하는 기업의 홍보 전략에 끌려 다니는 일을 일개 소시민도 아닌 ‘글로벌’을 지향하는 국내 굴지의 은행들이 벌였다는 사실을 몇 천만 원 대출만 받으려 해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서민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허술해 보이는 은행들이 실상 작은 지원만 있으면 미래가 창창한 진짜 실속 있는 벤처기업들에게는 높은 장벽을 치는 일이 또 얼마나 다반사인가. 기술 평가 능력은 없이 바람 잔뜩 든 풍선 같은 홍보 효과에 놀아나는 은행의 검증능력이나 그런 은행들이 매입한 채권을 자체적인 검증도 없이 덜컥 보험 물건으로 받아놓고 막상 거액의 피해가 발생하니 책임지지 않겠다는 무역보험공사나 그들이 일으킨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실상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은 여느 대형사건`사고들이 그렇듯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기술력에 대한 검증능력을 기르는 데 무관심한 정부 부처들과 금융기관들이 정권의 실적 올리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화뇌동하며 공공재인 금융자산들을 제멋대로 집행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게다가 수출입은행 같은 경우는 부실기업인 모뉴엘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해 육성대상 기업으로 끌어올려주기도 했다. 기업이 제출한 서류 몇 장에 국가적 재원을 3조원씩이나 몰아주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얘기다.

둘째는 금융권 요소요소에 박혀있는 소위 관피아들이 뇌물공세에 휘말렸고 아예 모뉴엘에 자식 취직까지 시킨 사례도 있었다. 그들이 조심스러워야 할 금융대출에 ‘빨리 빨리’ 바람을 불어넣었으리라는 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번연히 보이는 일 아닌가.

셋째는 시중은행 임원들의 자리는 정치적 바람과 가깝다보니 정부쪽 줄을 살피며 관피아들과도 잘 지내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서민들 눈에 그들이 부실대출에 무관하다고 쉬이 믿어질까 싶다.

넷째는 그렇다고 책임자들만 문제일까 하는 점이다. 담당자들은 서류상 하자 없으니 윗선에서 지시한대로 말 잘 듣고 편안히 지내는 무사안일은 택하지는 않았을까. 우리은행이 부실채권 회수에 나설 때 현장에서 몇몇이 제대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볼 수 있다. 정확한 기업 분석의 필요성을 느끼고 담당자에게 분석 요청을 하고 서류상의 문제는 없지만 재무제표상 의심 가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시장 평판을 살펴보고 수출시장에서의 평가까지 살피니 허점이 드러나 보였다고 한다. 물론 그런 현장의 소리를 제대로 경청한 임원진의 빠른 판단도 함께 했겠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책임감이 무엇보다 아쉬운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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