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효과에 대한 맹신
낙수효과에 대한 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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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재차 경기부양 골든타임을 언급하며 기업 지원을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했다.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아직도 안심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국내 경기가 걱정스럽기는 굳이 대통령만이 아니라도 누구나 매한가지다. 그러니 어떻게든 경기를 부양해야겠다고 정책적 노력을 쏟아 부으려는 뜻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경기부양을 위해 위축된 투자심리와 소비심리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동의한다. 다만 정부의 정책의지가 기업경기 회복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도식에서 한 발짝도 더 떼지 못하는 굳어진 발상이 답답해 보여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추경을 해서라도 기업의 투자심리를 살리라는 주문은 결국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을 반복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대기업이 활성화되면 그 영향이 중소기업에 미치고 다시 소비자에게까지 이르리라는 도식을 변함없이 답습하는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근자에 들어 대기업에 투입된 정책자금들이 제대로 중소기업으로 흘러내려가지 못하고 더욱이 소비자인 대다수 국민들에게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심각한 하방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이 돈벌이가 잘 된다고 일자리가 그만큼 늘지도 못하고 중소기업들은 저임금 일자리를 조금 더 늘릴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책자금이 많이 풀린다고 소비심리가 되살아날 가능성도 갈수록 희박해져가고 있다. 결국 정책자금을 더 풀어 소비자들의 빚을 늘려주는 기능에 치중될 위험성만 커지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게 판단해봐야 한다.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을 강구할 필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발상으로는 그 정책수단들이 오히려 한국사회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을 공산이 더 크다는 점을 염려하는 것이다. 시중에 자금이 없어서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자금들이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시각에서 다시 점검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미 기업들이 투자하는 대신 자금을 움켜쥐기에 급급한지는 오래됐다. 세계경기가 그런대로 돌아가고 총량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꾸준히 이루어지던 10년 전에도 생산설비 투자나 신사업 투자 대신 금융자산 늘리기에 몰두했었다. 그랬던 기업들이 지금 세계경제가 전반적인 침체를 겪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새삼스레 정책자금 좀 늘린다고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세계경제 상황이 그러하니 무역부문에서 기업투자 활성화를 기대할 것은 거의 없을 듯하다. 괜한 돈 낭비가 될 소지만 더 커질 뿐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역대 모든 정부가 그래왔듯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중소기업 활성화를 강조해왔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쪽에서 오히려 돌파구를 찾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물론 법적 중소기업 기준이 서민들이 생각하는 영세기업들은 아니니 중소기업의 기준 자체를 재조정해야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서민들 눈에는 분명 대기업이지만 법적 기준으로는 중소기업에 들어 중소기업 정책지원금을 독식하는 곳들이 좀 많은가.

그보다는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영세기업과 수많은 자영업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찾는 게 더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대기업에 고용을 늘리라고 해봤자 한쪽 늘리면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다른 쪽을 줄이는 식의 편법밖에 안 나온다. 결국 기업으로서는 인건비를 한 푼이라도 더 늘리는 선택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기업을 향해 고용을 늘리라고 백날 얘기해봤자 그건 그저 정치적 수사일 뿐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적 수사는 더 늘어날 테지만 지금처럼 경기는 죽어가고 사회적 활력 또한 줄어들면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의 경전으로 불리는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도 ‘국고가 넘쳐도 국민이 가난하면 그 나라는 강국이 아니다’라는 뜻을 후세에 남겼다던데 가난한 국민으로는 그 어떤 정치인의 원대한 꿈도 모두 헛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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