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훈·김신 삼성물산 사장의 '미션임파서블'
[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삼성그룹의 '최대 고비'로 손꼽혔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통과됐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서 삼성그룹이 2년 동안 진행해온 사업구조재편작업도 8부 능선을 넘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물산 vs 엘리엇의 44일 '불패전군(不牌全軍)'
삼성물산은 1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찬성 69.53%를 얻어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출석 주주는 총 553명, 의결권 주식수는 1억3054만8184주다. 이는 의결권 주식 총수(1억5621만7764주)의 84.73%에 해당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돌발변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였다. 양측은 지난달 4일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7%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직후 44일간 치열한 '불패전군'을 벌였다. 불패전군이란 절대 지지 않을 비기를 확보한 후 기회를 노린다는 손자병법의 10대 전략 중 하나다.
엘리엇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을 불패 전략으로 삼았다.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이 모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특히 ISS 의견서는 이번 합병의 핵심 변수로까지 손꼽히기도 했다.
초반 기세도 엘리엇이 잡았다. 법원에 삼성물산을 향한 가처분 신청을 연이어 제기했고, 해외 기관투자가들 역시 엘리엇과 뜻을 함께한다고 밝혀왔다. 엘리엇은 여세를 몰아 국내 소액주주들을 공략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삼성과 법정공방에 연이어 패하면서, 막판 여론전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물산은 임시 주총을 7일 남기고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어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이번 합병의 '키(Key)'였다. 법원의 지지도 삼성물산의 '불패전군'으로 작용했다. 법원은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결의금지 및 자사주처분금지 가처분'을 모두 기각했다. 엘리엇이 이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이마저도 기각 처분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은 변수는 소액주주들의 '표심'이라는 것이 재계의 중론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엘리엇은 국내 소액주주들은 물론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의 표심도 사로잡지 못했다. 특히 국내에선 학계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과 외국 투기자본'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했다. 여론이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흐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우리 기업'을 괴롭히는 외국 헤지펀드라는 인식은 주주총회 장에서도 이어졌다. 삼성물산 주식을 1900주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주주는 "내가 가진 주식의 가치가 축소되는 것은 가슴이 아프지만 외국 자본 때문에 삼성의 합병이 무산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며 찬성 의사를 밝혔다. 또 다른 주주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불발되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일"이라며 찬성표를 던졌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과 김신 상사부문 사장의 '미션임파서블'에 가까운 노력도 빛을 발했다. 최 사장은 미국 뉴욕과 홍콩, 유럽까지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 사장은 삼성물산 국내 사업장과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만나 회사의 입장을 적극 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사장은 최근 매주 수요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물산의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 2년 '숨 돌렸다'
재계에선 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2년간의 지배구조재편 작업의 '쉼표'를 찍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숨 가쁘게 달려온 재편작업을 잠시 내려놓고 재정비에 집중할 때라는 의미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3년 11월 삼성에버랜드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에 양도하고 급식 사업을 따로 떼어내 삼성웰스토리로 분사했다.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가 중심이 되는 지배구조재편 작업의 첫 단계인 셈이다.
지난해엔 삼성SDI와 제일모직 소재부문 합병이 진행됐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도 이뤄졌다. 이후 6월 삼성에버랜드의 상장발표까지 사업구조 재편작업이 이어졌다.
삼성그룹은 이 과정에서 합병 실패도 경험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지난해 11월 수포로 돌아간 것. 이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당분간 합병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은 1조9000억원에 한화그룹으로 매각했다. 전자와 금융, 바이오 등 주력 및 신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들 계열사는 지난 4월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로 재출범했다. 테크윈과 탈레스도 최근 한화테크윈과 한화탈레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한편, 금융투자업계에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다음 수순은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명진 삼성전자 IR팀장(전무)은 지난달 3일 열린 투자자포럼에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삼성SDS 합병 루머가 있는데 계획한 바 없는 내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