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노예계약' 논란③] 떠나는 내국인 조종사…승객 안전은 뒷전?
[대한항공 '노예계약' 논란③] 떠나는 내국인 조종사…승객 안전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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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송윤주기자] "대한항공 조종사로 일한다고 하면 국내에서 가장 큰 항공사라는 명예로 박수받던 시절도 있었죠.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좋아해서 노예 계약인 줄 알면서도 참고 다닌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계 항공사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만큼 사측의 부당한 처우를 참지 않고 나오는 조종사들이 늘어날 겁니다."

대한항공에서 8년 이상 근무하다 외국 항공사로 이직한 F씨는 최근 몇년 사이 대한항공 내에서 제기되는 불만의 목소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F씨는 "10년 전만해도 국내 항공사가 2개 밖에 없었고, 외국 항공사 가기도 힘든 시절이라 내국인 조종사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제 조종사들은 커뮤니티 등을 통해 다른 항공사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고,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측은 올해 상반기 회사를 떠난 조종사들은 30여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했다. 사직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거나 이후 사직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종사의 숫자는 상반기 퇴직자의 두 배 이상이며,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항공사는 파격적인 연봉을 내세워 외국 항공사의 조종사들을 영입하고 있다. 국내 대형 항공사 조종사의 평균 연봉에 비교하면 현재 최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불어 중국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조종사를 위해 주택 문제 뿐 아니라 자녀의 국제 학교 입학까지도 입사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항공사가 영어 구사 능력이 있는 한국인 조종사를 선호하고 있어 국내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중국 A380 기종의 교재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다.

대한항공보다 연봉이 낮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로 이직하는 조종사도 적지 않다. 대부분 대한항공이 조종사 관리를 위해 교육비 채무를 지게 하는 방식 때문이거나 사내 조종사 간 차별 문제 등으로 기장 승급 대기가 길어지자 이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난 경우다.

▲ (사진 = 대한항공)

대한항공에서 퇴사하는 한국인 조종사가 많아질수록 외국인 조종사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들 외국인 조종사가 대한항공이 아닌 특정 중계 회사에 소속돼 있어 비행 사고가 발생해도 대한항공이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에서 조종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는 E씨는 이와 관련 "대한항공이 직접적인 이력 관리를 하지 않다보니 이 점을 악용해 학력이나 경력을 속이거나 돌연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모 항공사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5년 내 이직이 잦은 외국인 조종사에게는 입사 제한을 두는 규정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조종사에 대한 사측의 특혜와 일부 조종사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내국인 조종사들이 외국인 조종사에 대한 불신이 쌓인 상황"이라며 "기장과 부기장 간의 긴밀한 협조가 이뤄져야하는 항공 비행 특성상 이같은 갈등은 승객의 안전 문제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발생한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사고 당시 입사 전 출신이 다른 조종사끼리의 갈등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되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비율이 높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2013년 국토교통부의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 기장 중 외국인의 비율은 23.5%로 국내 항공사 가운데 가장 높다고 밝혀졌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측은 사측의 외국인 조종사의 고용에 대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으로 이른바 '불법 파견'이라고 지적하며 10년 넘게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교육비 채무를 물려 조종사를 관리하는 대한항공의 방식은 업계에서는 익히 알려져 온 사실이지만, 최근 이에 반발한 조종사들이 잇따라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며 "조종사 간 계파 갈등으로 인한 안전 위협과 경쟁 항공사로의 이탈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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