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행정서비스 선진화
'멀고 먼' 행정서비스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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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보통의 시민들이 일상 접할 수 있는 공무원들은 대체로 민원처리를 담당하는 동사무소나 구청 직원들 혹은 파출소의 하위직 경찰관 정도다. 그들 대부분은 상당히 친절하다. 물론 어느 조직에나 하찮은 권위의식으로 무게 잡는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개의 말단 공무원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 공무에 친절히 응대하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행정서비스 시스템 자체가 여전히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의 시민 응대가 아무리 친절해도 서비스 시스템이 쓸데없이 번거롭고 복잡하면 시민들 입장에서는 결코 그 친절을 실감할 수가 없다.

이건 행정서비스의 번거로움을 직접 경험한 필자의 최근 경험담이다. 일반화하기에는 너무 적은 사례이지만 그 가운데서 전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우리 행정서비스의 한계를 발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어 소개해본다.

최근 필자는 운전하다 큰 사고를 냈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순간 덜 밟아 길 옆 풀숲 속으로 차가 미끄러져 빠지며 나무를 들이 받아버린 것이다.

덕분에 차량 번호판이 사라졌으나 한 여름 무성한 풀숲에서 떨어진 번호판을 찾을 길이 없어 새로 번호판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일단 보험사의 안내대로 구청에 가 새로운 번호판을 받으려 하니 일단 파출소에 가 분실신고부터 하고 오라 한다.

파출소에 가서 번호판 분실신고를 하려는 데 거기서 몇 시간이 소요된다. 일선 경찰관들의 부족한 일손을 도울 보조 인력이 나와서 확인 및 서류작업을 담당하는 데 일이 매우 서툴러서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고 확인 작업이 대단히 철저하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보험사와 전화 한 통화 하는 일도 없이 그저 신고 차주의 진술만으로 처리되는 일에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분실신고하고 서류 한 장 받아 구청으로 가니 민원인들이 많아 번호표를 빼들고 또 한 20분 기다린다. 간신히 순서가 돼 상황을 설명하며 관련 서류들을 내미니 새로운 서류 작업이 진행된다. 일이 끝나니 다른 창구에 가서 등록세며 신규 번호판 교환비용 등 청구서를 받으라 한다. 다시 줄을 서서 청구서를 받고 나니 은행에 가서 청구된 금액을 입금하고 또 다른 창구로 가라 한다. 은행에서 납부 확인 도장들까지 다 받고 지시된 창구로 가니 이번에는 인지대를 내고 또 확인 도장을 받는다. 그리고는 다시 처음 창구로 가란다. 안내하는 대로 처음 창구로 가니 다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 한다.

다시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새로운 차량번호와 번호판을 받으니 차량번호 교체작업을 도와주는 곳을 또 안내한다. 차량번호 교체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보험사에 새로운 차량번호를 통보한다.

그러고 보면 행정서비스만 과정이 번거로운 게 아니다. 보험사에 전화 통보하는 과정만 해도 통합전화로 걸어서 몇 단계를 거쳐야만 마지막 찾는 곳이 나온다. 간신히 전화통보하고 나니 이번에는 팩스로 새로운 차량등록증을 보내란다. 구청 내 이곳저곳 물어가며 팩스서비스를 받으려 하는 데 필자가 본 바로 세 대의 팩스 중 제대로 작동하는 팩스는 한 대 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팩스를 사용해야 하는 데 과거와 달리 여러 기능이 한 대에 집약된 복합기기로 팩스를 보낸 적이 없어 난감하다. 그런데 바쁜 공무원들에게 거저 팩스를 빌려 쓰는 처지에 도와달란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워 한동안 그냥 쩔쩔매다보니 보다 못한 한 젊은 공무원이 다가와 도와준다.

이 짧지만 지치는 경험을 하면서 느낀 소회는 아직 우리의 행정서비스시스템이 꽤 후진적이라는 것, 그래서 공무원들이 아무리 친절하고자 해도 그 의도가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는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차량번호판 분실은 분실된 번호판이 자칫 악용될 수도 있는 일인 만큼 철저히 확인해야 할 사항인 게 맞다. 하지만 그 확인절차가 꼭 민원인을 여기저기 뺑뺑이 돌리는 방식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중간 중간 기다리는 틈에 옆자리 다른 민원인들의 불평불만도 듣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 처리 과정이 이렇게 복잡한지 지친다는 것이다. 행정전산망이 그토록 잘 돼 있다는 대한민국의 행정서비스 현실이 민원인의 한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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