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국의 자격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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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식민지 35년 후 광복 70주년을 맞은 한국은 식민지배 기간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식민지 시절의 상처들을 끌어안고 있다. 식민지 백성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잡역부로 강제동원한 것도 모자라 10대 어린 소녀들까지 전쟁터의 성노예로 끌어간 엄연한 역사가 여전히 가해국인 일본으로부터 부정당하며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 백성을 순치시키고 세뇌시키기 위해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진행했던 식민사학의 폐해는 친일파들이 여전히 해방된 한국 사회에서도 득세하고 독립운동가가 거꾸로 그들 손에 탄압 당하던 본말전도의 역사 속에서 더욱 확산, 심화되는 불행을 겪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소위 정치인이라는 이들 중에도 종군 위안부들을 매춘여성 취급하는 반역사적 인물들이 버젓이 큰 소리치고 나설 수 있을까.

그런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결국 식민사관으로 미래세대까지 일제가 쳐놓은 덫 안에서 사고하도록 세뇌시키는 노예교육을 지속하게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학’은 식민지 시절의 사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틀 안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조종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친일파 일부를 제외하면 직접 위안부로 끌려가지는 않았더라도 ‘정신대’ 끌려가지 않으려 서둘러 혼인한 딸들 한둘은 어느 집안에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위안부 혹은 정신대 등 시기별로 이름을 달리하며 끌려갔던 우리의 딸들, 지금에 이르러서는 할머니가 된 그 세대들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모욕하는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가계가 친일 가계여서 그런 피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음을 자백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해자 편에 섰던 세력이 여전히 힘을 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듯 스스로의 잘못을 온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역시 그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기피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다.

일본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전쟁범죄를 미화함으로써 자국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반인륜적 역사행위조차 자부심을 가지도록 잘못 길들여가고 있다. 스스로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이런 행위는 세계의 지도적인 국가로 성장하려는 일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우리는 흔히 나치만행에 대해 매우 낮은 자세로 사죄하는 독일과 일본을 비교한다. 독일은 그렇게 자세를 낮추고 잘못을 거듭 인정하며 사죄함으로써 2차 대전 패전국에서 통합 유럽의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같은 패전국으로 전후복구에 성공하며 함께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지금 주변국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현재는 그리스문제로 유로존 지도국으로서의 시험대에 다시 오른 독일이지만 결국 지도국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독일의 정치가 올바른 길을 찾아 가지 않을까 기대를 받고 있다. 물론 독일내 여론도 엇갈리고 있다지만 결국 정치지도자들의 철학 있는 역사인식이 유로존이 오늘날 처한 고민들에 대한 해법을 찾아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를 이끌어가는 국가로는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 외에도 새로이 떠오르는 중국과 더불어 유로존을 사실상 이끌어가는 독일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스스로 지도국의 위상을 버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국방력을 앞세운 패권주의적 자세를 보이는 데 비해 오로지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을 통합하고 이끌어가는 독일의 경우는 특히 우리가 주목해 볼만하다. 무엇이 지도국을 가능케 하는지에 대해 우리 또한 먼 미래를 보며 고민해야 한다.

결국 지도국이 되려면 어른스러운 나라가 돼야 한다. 철없는 아이 같이 ‘난 잘못한 거 없다’고 우기는 일본, 힘에 밀리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과한 행동을 하느라 나날이 고립되어가는 북한, 그런 북한을 어른스럽게 끌어안고 가지 못하는 남한 모두가 아직은 너무 어리다.

통일을 이루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무력으로만 세계를 제패하던 역사의 시대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의 막강한 무력이, 그런 미국을 추격하려는 중국이 힘을 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수 없는 것이다. 포용력 있는 국가, 철학이 있는 국민이 제대로 자신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역사도, 철학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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