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과 일자리 늘리기
파견법과 일자리 늘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정부여당이라고 쓰고 박근혜로 읽어야 할 정치세력들이 강력히 원한 이번 경제관련 법안 통과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뚝심’이 사실상 승리했다. 그러니 이제 정부 장담대로 경제가 활성화돼야 할 텐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궁금하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제안한 법안 중 사실상 야당과의 마지막 쟁점이 되고 있는 파견법 개정안이 아직 남아있긴 하다. 그런데 이 법안 개정을 강력히 밀어붙이는 정부의 논리를 아무리 뜯어봐도 납득되지 않는 점이 많다.

일단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을 들어보자. 요약하면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장년 고령층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완화하며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논리 다 생략하고 아주 단순한 의문을 던져보자.

개정안에는 55살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및 선원, 간호조무사 등 절대금지 업무 10개를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는 운전,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이 허용된 것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 절대 안될 10개 종목 빼면 다 해도 된다고 했다는 점이 개정하고자 하는 정부 의도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늘어날 일자리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도 구체적으로 조사된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알 수 없고 비숙련 파견근로자들을 사업체들이 과연 얼마나 유용하게 여길지도 불확실하다.

필자가 듣기로는 현장노동자들의 정년은 통상 55세이지만 실제 그 연령까지 현업에서 노동하는 경우는 매우 숙련된 노동자들에 한할 뿐 대개의 비숙련 노동자들은 그 나이가 되기 전에 일자리에서 밀려나기 십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 53세의 나이에 지방 공단의 생산기계 제작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한 남성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을 호소하는 본인의 심정과 달리 주변 대학 동기들로부터 “여태 일하다니 부럽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주력사업에 실질적 수익을 안겨줌으로써 정년까지 현장에서 일했고 또 진행 중인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정년을 맞자 같은 일, 같은 보수를 약속받으며 한 2년 더 연장근무하기도 했다.

그만큼 쓸모가 있다는 회사의 판단 덕분이겠지만 만약 그의 일이 누구나 할 만한 일이었다면 회사가 정년 넘긴 그를 더 이상 썼을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현장 근무 30년에 그의 연봉은 6천만 원이었다. 그와 같은 현장 노동자들 덕분에 회사는 불과 10년 남짓에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지역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생산현장에서 일하다 그보다 먼저 회사를 나와야 했던 주변인들은 부러워했고.

이런 게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인데 지금 정부는 노동자들을 더 낮은 임금에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나락으로 자꾸 밀어 넣고 있다. 그러면서 파견법을 통과시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아무래도 미심쩍다.

파견업체가 중간에 끼면서 늘어나는 비용만큼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더 줄어들 테고 사업체들로서는 같은 노동력을 낮은 급료로 고용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해소될 것이라는 정부 주장도 있다. 소위 뿌리산업이라 불리는 주조, 금형,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용접 등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의 42개 기술직종이 최대 1만3천여 명 가량의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는 데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요하는 일이어서 젊은이들이 기피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런 곳에 55세 이상의 고령노동자를 파견근로자로 채우면 그들의 급여는 현재의 초임자 보다 더 낮을 수밖에 없다. 파견업체의 수수료가 현 수준의 급여에 포함될 테니까.

또 하나 웃기는 것은 사내 하청 노동자가 파견노동으로 옮겨가 현재보다 처우가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인데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사내 하청 노동자보다 더 높은 급여를 주며 파견노동자를 쓸 까닭이 없을 테니까.

어느 모로 보나 정부의 논리는 허점 투성이다. 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사상누각 식의 허랑한 정책은 우리 사회를 후퇴하게 만들 뿐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