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개성공단 폐쇄, 得과 失
[홍승희 칼럼] 개성공단 폐쇄, 得과 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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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개성공단 폐쇄와 더불어 대한민국 내에서는 비판하기가 두려워지는, 저절로 과거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매카시즘이 횡행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거론하고 싶은 의욕도 삭아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커서 한마디 할 수밖에 없다.

한 10년 전 쯤 개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개성공단을 밖에서 둘러보고 고려시대의 성균관을 그대로 활용한 개성박물관도 볼 수 있었다.

농지가 부족한 북한 실정 때문이었는지 야산 꼭대기까지 농지로 개간했다가 연이은 홍수피해로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경험한 북한이 서둘러 야산에 다시 나무심기를 시작한 흔적도 보았다. 70년대에 설치했다던 놀이시설들은 흉물스럽게 버려졌고 70년대 이후 건축은 없었는지 낡은 아파트들만 몇 채 보이는 모습에 북한이 80년대부터 경제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실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근까지 한국기업들이 조업하던 개성공단 1단계 1차 시설 지역의 몇 배에 달하는 넓은 면적을 새로운 공단지역으로 토지 조성을 마친 채 2차 시설공사를 손꼽아 기다리던 풍경이었다. 당초 예정대로 3단계까지 나아갔다면 그 면적은 현재의 몇 십 배에 달해 전략적 가치도 월등히 커졌을 것이다.

당초 양측의 약속대로 이 공단지역에 남쪽 기업들이 대거 투자를 했다면 이 지역은 북한 땅에 건설된 남한 조계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그랬다면 남북한 모두가 개성공단을 지금처럼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어도 개성공단은 실상 대치중인 남북한 사이에서 남한의 ‘적지조계(敵地租界)’로 해석되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었으니까.

원래 개성공단이 들어선 지역은 북한의 2군단 주둔지였다고 한다. 그 곳에 공단을 조성하기 위해 2군단 사령부가 북쪽으로 대폭 후진하면서 군단 내 3사단 예하 3개 대대 병력만 공단 주변에 배치시켰다고 군 관련자로부터 들었다. 물론 개성공단 주변에 배치시켰다는 3개 대대는 주로 장사정포를 다루는 포병 위주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단 주둔지를 십여km나 뒤로 물린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 장사정포의 최대 사거리가 개성에서 서울까지의 거리인 60km라고 하니 그 사정거리 밖으로 군단사령부를 후퇴시키는 결정이 쉬울 리가 없다. 그만큼 개성공단에 거는 기대가 북한에게도 매우 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한 쪽에서는 그런 가치가 없었을까. 북한에서 몇 차례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며 남한 정부와의 갈등을 빚기는 했지만 정치적 갈등만 아니라면 개성공단은 북한 땅과 북한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하며 굳이 선박을 이용할 필요도 없이 육상 운송만으로 물자가 오갈 수 있는 단거리의 이점도 컸다. 한국의 기업들이 값싼 인건비를 찾아 떠나갔던 나라들에서도 결국 급등하는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껴 철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성공단 인건비 문제는 실상 큰 이슈가 될 수 없다.

물론 현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비용이 결국 여유 있는 돈줄에서 나왔을 테고 그 돈줄의 하나가 개성공단이었다고 여길 나름대로의 근거도 갖고 있으리라 본다. 대외 교역이 공식적으로는 중국 외에 철저히 봉쇄되다시피 한 북한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면 남과 북은 영원히 교류가 불가능하다. 사실상의 왕조국가와 다름없는 북한 사회에서 모든 수입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개성공단은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한 지렛대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잇단 보수 정권들이 그 지렛대를 활용할 생각을 않았다는 데 있다. 전쟁의 주체가 되는 정부라면 전쟁 중에라도 적국과의 대화의 채널은 늘 열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국면을 주도해 나갈 가능성이 더 커지니까.

그런 점에서 보수 정권들은 한국이 행사할 수 있었던 몇몇 분야에서의 주도권마저 거푸 미국에 넘겨주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남한 정부의 의견을 대부분 참조할 수밖에 없는 데 그런 주도권을 미리 포기하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앞에 바치고 있는 셈이다. 남북 대결에서는 하등의 실효성이 없다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까지 허용하며 이 땅에서의 전쟁 위험을 더 높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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