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칼럼] 대공황의 전조 '장기불황증'
[홍승희칼럼] 대공황의 전조 '장기불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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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 그것도 대공황의 전조마저 보이는 긴 불황에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배타주의적 징후들이 매우 불길하다. 이를 필자는 의학적, 혹은 경제적 용어는 아니지만 '장기불황증'이라 이름 붙이기로 했다. 이런 증상의 대표적 사례는 극단적 언어들이 난무하는 공식 비공식 발언들을 통해 대중들을 선동하는 위험한 선동가들이 정치 일선에서 자리를 넓혀 간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증가시켜온 '관용'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을 잃고 각국은 밖을 향한 대중적 적대감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등장한다. 이들은 보호무역주의를 외치고 모든 논리는 오로지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에만 매몰된다.

그 어느 때라고 정치인들이 인도주의를 자국민 이익보다 우선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대외적 논리는 그럴싸한 포장을 하다보니 곁가지로 이러저러한 인도주의적 행동들이 따라가기도 했지만 근래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는 선동적 정치가들에게서는 그런 체면치레는 사라져가고 있는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자주 나타난다.

마치 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보상금의 부담에 짓눌리던 독일의 국민들이 국가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건 나치의 선동에 일시적이나마 동조하고 나섰던 역사적 사례가 단지 지나간 역사로만 그치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요즘 그런 선동가들이 정치 일선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환호를 받는다. 물론 비판도 많이 받지만 추종하는 세력들도 만만찮다.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에게만 세계인의 관심이 쏠려있는 동안 필리핀에서는 이미 트럼프를 능가한다고 평가받는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범죄자에 대한 재판 없는 처형을 자랑하고 성폭력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치 않는 이가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그 사회의 집단이성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는 매우 불길한 신호다.

그런가하면 평소 신사의 나라라던 영국에서는 총리와 여왕이 잇달아 대외적인 실언들을 쏟아내고 뒤늦게 이를 수습하느라 허둥대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극단적 주장을 쏟아내던 극우정당이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나섰고 유럽에서의 지도국 지위를 의식하며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밀려드는 난민 수용에 상대적으로 적극성을 보이는가 싶던 독일은 메르켈 총리가 더 이상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분위기로 발언을 한다.

곳곳에서 정치적 이유든, 경제적 이유든 난민은 몰려다니고 그런 난민들은 이제 각국이 높여가고 있는 국가주의의 장벽 밖에서 온갖 위험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됐다. 자국에서는 폭력적 국가권력에 쫓기고 국가를 벗어나면 어디서도 받아주는 곳이 없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버린 오갈데 없는 난민으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도, 클린턴도 모두 보호무역을 지지하고 나선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앞으로도 외환시장 개입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미국은 그런 일본에 압박을 가하며 일본에서 열릴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중국은 자국내에서의 소수민족 분리독립 움직임에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외적으로는 첫 자국산 잠수함을 비롯한 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자본유출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주요 도시마다 중국인들이 사들인 부동산이 블록을 형성하는 지경에 이르자 자칫 주객전도의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시민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또 배타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 이미 세계가 장기 불황에 따른 배타주의의 고리 속에 단단히 묶여들고 있다.

장기불황에 대응하기 위한 이런 배타적 선택들이 세계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며 어쩌면 1930년대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심각한 공황사태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나 재계가 모두 아직도 고속성장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서 헤쳐 나올 생각을 않는다. 실업자가 수두룩한 나라에서 생산인력 감소가 국가적 위협이라는 협박만 해대고 장기 휴가에 소비할 수 있는 이들은 국내보다 해외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사실조차 계산할 능력이 못된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임시휴일 발표로 일본 소비만 늘려줬다. 보고 있자니 그저 심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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