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조문 행렬의 시대
[홍승희 칼럼] 조문 행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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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여기저기서 시민 조문이 잇따르고 있다.

강남에서는 젊은 여성이 화장실에서 피살돼 충격을 주더니 구의역에서는 불과 19세 젊다기보다 어리다고 해야 할 청년노동자가 둘이 한조로 해야 할 일을 혼자 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맞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했다.

이들 꽃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다 보니 이번엔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이 붕괴되며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뒤를 이었다. 그 틈에 수락산 등산로에서 새벽 등산에 나섰다가 살해된 60대 여성의 죽음은 머릿속에 들어설 자리조차 없을 지경이다.

여성 그리고 노동자. 도합 네 건의 사건·사고에서 공통된 코드는 모두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약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 약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무엇인가.

범죄자들에 의한 죽음은 손쉽게 범죄자 개인의 죄만 묻고 끝내려 하고 노동자들이 일하던 현장에서 죽음을 맞으면 죽은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사회에서 그런 가슴 아픈 일들은 그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다 함께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어린 아이들조차 ‘왕따’를 하며 자신들 또래에서 입지가 약한 아이들을 괴롭힌다.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고 그 아이들이 그 상태 그대로 더 자라나서 제대로 인성을 갖춘 어른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데 어려서부터 약자를 괴롭히는 데 아무런 죄책감조차 없다면 그건 어른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그런 사회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위 VIP 고객들을 상대하던 대학생 조카 하나가 VIP 고객들의 소위 ‘진상’ 떠는 모습에 학을 떼며 일을 그만뒀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학생들이 흔히 하는 아르바이트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어른들이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는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하긴 대학생 아르바이트들에 대한 사회적 문제점이 제기되며 사회적으로 시끌벅적하던 시기에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비정규직 직원 형식으로 채용해 정규직과 아르바이트 사이에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계급을 새로 만들어냈던 백화점의 행태도 기막히긴 마찬가지였다.

요즘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지만 둘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에게, 경험자가 할 일을 초보자에게 맡기고 정규직이 할 일을 비정규직에게 맡기며 비용 절감하는 게 구조조정의 본모습이라면 그 끝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일은 너무 빤하게 예상되는 미래가 아닌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노동자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린 그런 변화를 과연 '발전' 혹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겠는가.

은행들에서 심심하면 터지곤 하는 전산상의 여러 문제들도 따지고 보면 비용절감을 위해 내부 직원 대신 외부 하청을 주면서 더 심해지지 않았는가. 외부하청을 줌으로써 비용을 절감했다고 자랑스레 주주총회 자료를 내지만 외부 하청이 더 비용이 적게 든다면 그 하청기업에서는 또 그렇게 줄어든 비용에 맞추기 위해 어떤 무리수를 둘지를 왜 궁금해 하지도 않는가.

그렇게 차례대로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기관이나 인물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에 내몰려 사고를 내고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는 노동자들에게 작업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둥 잘못을 덮어씌우며 책임회피하기에 급급하다.

문제는 그 매뉴얼이라는 것이 현장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못한 채 탁상공론으로 혹은 담당 공무원 한 사람의 얕은 상식에만 맡겨져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담당 공무원 한 사람의 탓만 할 일도 못된다. 전문성을 따지지도 않고 여러 의견을 취합할 시스템도 만들어주지 못한 정부 조직상의 문제이지만 늘 책임은 말단에서 지거나 그도 아니면 사건`사고의 최하층, 가장 약한 이들에게 덮어씌워진다.

왕조시대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고 또 오랜기간 군사정권이 민정의 허울을 쓴채 이어지다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어른들의 명령에 잘 따르는 아이가 모범생이고 그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역시 명령에만 충실한 조직구성원이 모범적 사례가 되는 사회가 반복되며 어른다운 어른도, 상사다운 상사도 없는 무법천지로 변해가고 있다. 책임질 능력도, 업무에 관한 전문지식도 없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이 넘치는 사회에서 당연히 벌어질 일이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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