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황준익기자] "경제발전의 기여도나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돈을 버느냐 안버느냐만 따진다."
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서 해운업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정책 위주의 단기적 유동성 확보에만 집중해 해운사 경쟁력 강화에 대한 대비는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7일 한국선주협회가 주최한 '사장단 연찬회'에서 해운사 대표들은 해운업 구조조정과 인식에 불만을 쏟아냈다.
이날 연찬회에 참석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해운사들이 터미널 등 핵심 자산까지 팔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산터미널에서 국내 해운사가 가지고 있는 터미널은 거의 없다. 부산에서 외국터미널을 이용하는 상황이 연출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터미널을 매각했더니 다시 터미널 확보를 지원하겠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며 "해운사들이 더 이상 팔게 없어 용선료 협상에도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자산 매각 과정에서 수익성이 높은 벌크 전용선사업부와 항만터미널 등을 처분했다. 특히 벌크 전용선사업부는 해운사의 대외 신인도에 큰 영향을 주며, 불황기에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주는 안정적인 사업부다.
항만터미널 지분 역시 외국 자본에 매각되면서 국가의 산업적·군사적 전략지가 외국회사에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한 중소해운사 관계자는 "두 선사가 갖고 있는 씨앗들을 다 팔고 있는 상황"이라며 "후에 이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토로했다.
100여명이 넘는 해운업 종사자들이 모인 이번 연찬회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위기가 해운업 전체의 위기로 인식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윤재 선주협회장은 "양대 정기선사 구조조정이 마치 한국해운이 침몰직전에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대외 신인도가 크게 저하된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주협회에 따르면 151개 회원사의 지난해 경영실적은 114개사가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37개사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또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구조조정 중이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원사를 제외한 148개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9000억원, 당기순이익은 6000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제외한 대형선사(SK해운, 현대글로비스, 팬오션)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265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7.3%다. 고려해운, 장금상선, KSS해운 등 매출상위 30개 중견선사들의 지난해 총 영업이익도 9439억원(8.7%)이다. 해운업 전체가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해운업계는 조선업과 한데 묶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중소해운사 관계자는 "조선업 부실은 10조원에 이르는 반면 해운업은 2조원에 불과하다"며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조선소는 대형 선박위주로 건조하다보니 우리 같은 중소해운사들은 발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수출입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소 수주잔량 대비 자국 발주 비중은 12% 수준이다. 일본(38%), 중국(30%)에 비하면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정부의 지원 방향은 해운사의 재무제표 개선에만 급급하다"며 "기업의 생존 해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으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을 정도의 해운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연찬회에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측은 참석하지 않았다. 한진해운 측은 사채권자집회 관계로 미리 불참을 통보했지만, 현대상선 측은 당일날 급하게 불참한다고 알렸다.
연찬회에 참석한 중소해운사 대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와도 할 얘기도 들을 얘기도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