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한국 땅에 사드 배치를 확정 지은 미국과 그로 인해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매우 불편해진 한국. 그 불편해진 한 축에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한국 정부가 유독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면에서는 사드 배치로 한결 편해진 한미관계보다 더 신경 쓸 대목이기도 하다.

아직 러시아는 중국만큼 노골적으로 한국에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고 눈에 띄는 보복조치도 없으니 우리로서는 일단 러시아라도 다독여놓고 볼 일이기는 하다. 어차피 경제상황이 나쁜 러시아로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깨트릴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중국이야 남사군도에서는 일본 편을 들면서 한반도에서는 또 사드까지 배치하는 미국에 대한 불쾌감을 애꿎게 허약한 한국을 향해 쏟아 붓는 꼴이지만 러시아로서는 아직 그렇게 걸린 문제도 없으니 문제를 풀어나가기에 그래도 무난한 상태인 셈이다.

필자가 최근 시베리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에서 직항로가 개설된 관계로 불과 4시간이면 가 닿는 이르쿠츠크에서 만난 러시아는 서쪽 러시아와는 영 다른 분위기다.

제정러시아 말기 동방진출 교두보로 건설된 도시 이르쿠츠크는 러시아가 큰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러시아적이기보다는 그냥 동아시아, 그것도 몽골리안의 땅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인지 서쪽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자손일 게 분명해보이는 현지의 백인 러시안들도 정서는 다분히 아시아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넘기고 독립국가 연합이 분리해 나간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보유한 나라답게 러시아는 빈 땅이 참 많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예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툰드라 즉 침엽수림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진 가운데 점처럼 작은 도시가 러시아에서는 제법 큰 도시인 이르쿠츠크다.

그렇게 비어있고 놀고 있는 땅, 적어도 비좁은 국토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한국인이라면 으레 그리 느낄 법한 빈 땅들이 너무 지천이다. 그 땅에서 나올 수 있는 자원 가운데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은 얼마인지 그들도 모르고 우리도 모른다.

그런 일들을 양국이 논의하기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도 양국은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로 겨우 경제협력의 입을 떼었을 뿐이다. 에너지도 그렇고 유라시아 철도 문제도 그렇고 우리에게 러시아가 절실히 필요하듯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여러 제재 속에 그나마 숨통 틀 수 있는 쪽이 아시아이고 그 중 한 나라가 한국이다. 유럽과 입장이 다른 우리가 러시아와 등돌릴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되면 좀 더 진전된 경제협력의 성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 유일호 부총리는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각종 경제협력과제를 꼼꼼히 점검하라고 당부했지만 기술협력에는 너무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을 성 싶다.

적어도 푸틴의 러시아에서 기술협력 따위는 잊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을 이르쿠츠크에서도 받았으니까. 함께 공유할 성과를 향해 공동보조를 맞추도록 하는 전략이어야지 ‘우리가 돈 댈테니 너희 기술 좀 나눠줘’ 한다고 제대로 된 기술을 얻기는 힘들다. 나로호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고 과거 경협자금 대신 받은 고철덩어리 잠수함으로도 넘치게 체험했다.

어차피 줄 것 주되 받을 조건 확실히 먼저 다지고 가는 안전 제일주의로 나갈 일이다. 러시아가 지금 경제적으로는 좀 어렵다지만 그렇다고 작은 나라가 결코 아니니까 대충 먼저 주면 뭔가 나오는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르쿠츠크에서 사고가 나서 본의 아니게 러시아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에 그들이 의약품이나 의료용품에서 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으레 입원하면 꽂아주는 수액주사 따위는 물론 없고 진통제도 최소한의 처방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러시아어를 모르는 필자로서는 통역의 난해한 통역에 의지해 띄엄띄엄 알아들은 수준이지만.

의약품 뿐만은 아니다. 미국의 대러 제재로 인해 농업은 어쩔 수 없는 유기농업으로 돌아섰고 요즘은 오히려 그걸 특화시키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고도 한다. 우리가 저들에게 어떻게 접근해 들어가야 할지를 그렇게 밑바닥에서부터 훑어가며 살펴볼 일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