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위 "수요 현실성 고려…더 미룰 수 없어"
[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정부가 민영화에 난항을 겪고 있는 우리은행의 지분매각 계획을 '과점주주 매각방식'으로 수정했다. 사실상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그간 '과점주주 매각방식'과 '경영권지분 매각방식'이라는 투트랙으로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수요가 없는 경영권 매각을 계속 추진하기엔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포기하기로 했다.
◆예보 지분 30%가 대상…1곳당 4~8%
22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제125차 회의를 개최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보고받은 '우리은행 과점주주 매각방안'을 의결했다.
이날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경영권 지분 매각으로 한 번에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성사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 더 이상은 경영권 매각방식을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경영권 매각방식이 아닌 다른 매각방식들은 공적자금 회수 측면에서 다소간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사리 추진할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공자위는 우리은행 매각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데 전원이 의견을 함께했고, 우리은행 매각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비용이 계속 늘어난다는 점과 미룰수록 해결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 모든 위원들이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자위는 지속적으로 수요점검을 진행한 결과, 경영권 매각을 계속 추진해 시간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과점주주 매각방식이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는 게 윤 위원장의 설명이다.
과점주주 매각방식이란 주요 주주들이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각자 참여하는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총 매각물량은 예금보험공사 보유 지분 48.09% 중 30%로, 투자자 1인당 매입 가능 물량은 최소 4%에서 최대 8%다.
매각 후 과점주주 보유지분 합계가 예금보험공사 잔여지분보다 많도록 하기 위해서 이같이 정했다. 현재 예보 보유 지분은 51.06%지만, 작년 소수지분 매각 당시 부여한 콜옵션 이행을 위해 2.97%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 공자위는 올해 말까지 매각을 종결한다는 목표로 오는 24일 매각공고, 9월23일 투자의향서(LOI) 접수, 11월 낙찰자 선정, 12월 주식 양수도와 대금 납부 순으로 계획을 세웠다.
낙찰을 받은 과점주주들은 이사 선임을 통해 우리은행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매각 성공 이후 예금보험공사와 우리은행의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은 공자위 의결을 거쳐 즉시 해지된다.
윤 위원장은 "국내외 유수의 은행들의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10% 수준인 과점주주 지배구조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과점주주들에게는 적극적인 경영참여 기회가 열린다고 볼 수 있다"며 "매각이 성공할 경우 향후 우리은행 경영은 과점주주들을 중심으로 한 민간주주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입찰방식은 희망수량경쟁입찰로, 원칙적으로 입찰가격 순으로 낙찰자가 결정된다. 과점주주 매각방식의 특성상 낙찰된 투자자가 이사회 등을 통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특수성을 감안해, 비가격요소도 일부 반영할 계획이다.
◆"투자수요 상당 수준 존재"
정부는 지난 2010~2014년 4차례에 걸쳐 우리은행의 경영권 매각을 시도했지만, 유효수요 부족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에 전임 공자위원이 경영권 지분 매각과 과점주주 매각을 함께 추진하는 새로운 방안을 내놨고, 이후 정부가 직접 중동 국부펀드를 접촉하는 등 앵커 투자자 발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새 매각방안 마련 이후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이번 과점주주 매각방식의 경우 잠재 투자수요가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경영권 매각과 비교할 때 과점주주 매각방식은 투자자금 부담이 낮다는 점에서 매각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또 경영권 전체를 확보하지는 못하더라도 사외이사 추천 기회를 통해 은행 경영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는 인센티브가 매력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윤 위원장은 "과점주주 매각에 참여하고자 하는 수요는 상당 수준 존재한다"며 "자세한 투자수요 현황에 대해서는 투자자의 요청, 향후 입찰 과정에서의 영향을 고려해 밝힐 수 없으나 국내・외에서 편중되지 않은 다양한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4%이상 신규낙찰자에게는 사외이사 1인을 추천할 기회를 부여하는데, 컨소시엄의 경우 구성원 중 4% 이상 신규낙찰자 1인에게만 이 권한을 부여한다. 따라서 사외이사 추천을 희망하는 컨소시엄의 경우 4% 이상 신규입찰자 1인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가급적 많은 물량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물량 규모별로 사외이사 재임 기간으 차등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5% 이상 낙찰자는 3년, 6% 미만 낙찰자는 2년의 재임기간을 갖는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사외이사 추천 여부에 따라 과점주주의 처분 제한기간도 달라진다. 사외이사를 추천할 경우엔 이사 재임기간 동안 처분할 수 없고, 비추천시 6개월 이후엔 처분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매각이 성공하면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간주주들의 지분 총 합계가 정부 보유 지분을 초과하는 만큼, 매각의 성공이 곧 실질적 민영화의 달성이라고 설명했다.
공적자금 회수 측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매각 예정 가격과 관련해 윤 위원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민영화된 은행의 가치가 상승하면 예보 잔여지분 21%로 주가 상승 혜택을 누려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