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요즘 '터널'이라는 영화가 빠르게 몇백만을 훌쩍 넘기며 기록을 경신해 가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여름내 깁스를 하고 지내느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저절로 세월호를 떠올리고 우리 사회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재난시스템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경쾌하던 퇴근길에 지나가던 터널이 붕괴되고 갇힌 주인공을 두고 터널 밖에서 구조대와 국가재난시스템, 언론, 시공업체 등등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흥행에 열을 올리거나 책임 벗어나기에 혈안이 된 상황, 시간이 지나면서 갇힌 사람의 ‘인권’은 실종되고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이 단 한 사람의 구조 때문에 지체된다고 짜증내는 세태를, 그렇게 논쟁거리를 만들며 사건의 핵심을 비껴가는 꼴을 꽤 다양하게 보여준다고 한다.

이미 세월호에서 본 모습, 또한 여러 재난사태 이후 항시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못난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모양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늘 뒷전인 채 책임공방이 시간을 끌다가 슬그머니 핵심을 벗어난 주제로 논쟁을 이끌어가며 대중의 관심을 희석시키고 같은 사건 사고가 반복돼 일어나는 나라. 부정하고 싶어도 감히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일반 대중들이 겪는 참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군에 갔다가 난치병에 걸린 형제 병사들의 참혹한 실상이 일부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군의관들의 태만과 약물 오용으로 인한 증상 악화와 무성의한 오진 대처로 인해 치료시기를 놓쳐버림으로써 난치병으로 진행되어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국가 기관에 의한 피해이니 마땅히 정부가 그 치료를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기관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어 당사자들과 엄마 홀로 고통을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병역의무기간,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선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처럼 참혹하게 내팽개쳐질 정도라면 이미 우리는 국가가 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군에 아들을 보낸 수많은 부모들이 전쟁 중인 것도 아니건만 제대하는 그날까지 편한 잠자리를 갖지 못하는 걸 당연시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군대문화를 놔두고 병역의무만 강제할 자격이 국가에 있는가.

물론 지난번 목함지뢰 폭발로 발목을 잃은 병사에게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가가 책임질 일이라고 한마디 하니 해결이 된 모양인데 매 사건마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돌아가지 않는 국가 시스템이라면 그 후진성에 또 한 번 기가 막힐 일이다.

하긴 사사건건 대통령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주문해대니 아래 사람들이 뭘 능동적으로 할 생각조차 안하는 풍토로 흘러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적극적으로 일 하려 들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왕따 시키기 십상인 우리 사회의 문화풍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의 하나가 되겠다. 이런 문화풍토야 말로 우리 국민 누구도 ‘난 떳떳하다’거나 ‘난 결백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 원인 중의 원인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 하는 말로 자본주의사회를 ‘기회 균등’의 사회라고 미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생활을 마쳤다. 그러나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려면 부모의 재력이 자손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시스템은 바꿔야 마땅하고 그러자면 국가가 좀 더 큰 역할을 해야만 한다.

가난한 부모를 만났어도 힘써 노력하면 계층상승의 꿈을 이룰 수 있을 때 기회 균등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난한 부모 덕에 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학자금 융자 등으로 상당한 금액의 빚을 떠안고 출발해 당장 취업준비 할 여력이 부족하니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시험 공부를 한다. 이미 부모 덕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고사하고 그저 먹고 자는 걱정 만 없는 또래들과의 격차도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런 젊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몇 달간 취업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월 50만원씩 주는 게 젊은이의 의존심과 나태를 부른다는 참 걱정 많은 중산층 기성세대들을 만나면 우리가 과연 한 나라 국민이고 같은 비전을 갖고 이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동시대인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장애인들에게 주어지는 수당과 연금도 그렇다. 취업이 불가능한 장애인들, 그들 중 상당수는 가족의 보호조차 받기 어려운 형편이라 알고 있는 데 그들이 받는 총 국가 지원금이 최대 연금 20만원, 수당 4만원이란다.

이걸로 그들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이라도 한 번 해봤을지 모르겠다. 국가 예산의 한계도 있겠지만 우린 지금 과연 최선의 선택 속에 살고 있는지 좀 되짚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