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독립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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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차민영기자] '본 자료의 작성 담당자는 자료에 게재된 내용이 본인의 의견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으며,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 없이 작성됐음을 확인합니다.'

상장사 분석보고서 끝머리 한 줄로 남은 애널리스트의 신념이 과연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을까.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금융투자협회과 4자간 협의체를 구성한 후 3개월 간의 논의를 거쳐 최근 'IR·조사분석 업무처리 강령'을 제정했다. 애널리스트에 대한 상장사의 일방적 '갑질'을 제재하고 건전한 리서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의도에서다.

이번 가이드라인 제정의 직접적 원인이 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3월 교보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하나투어의 면세점 사업이 부진하다며 목표주가를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에 하나투어 IR담당자는 "보고서 내용이 잘못됐다"며 기업탐방 금지 등을 운운했고,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하나투어 측의 부당행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리서치계의 반감이 최초로 단체 행동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이번 신규 업무강령에는 상장사·애널리스트 준수사항 명시, 4자간 협의체를 통한 상호이해와 협력 도모, 위원회를 통한 갈등 조정 프로세스 마련 등이 포함됐다. 강제성이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금감원이 행동주체로 포함돼 유명무실한 IR 모범규준을 대체하기에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특이점은 갈등의 주체인 상장사, 애널리스트 뿐만 아니라 증권사의 역할까지 구체화시킨 대목이다. 업무강령은 증권사에 개별 애널리스트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조사 분석자료 수정 시 증빙 의무를 철저히 할 것을 주문했다.

상장사가 '고객사'로 등장하는 순간 증권사는 '을', 애널리스트는 '병'의 위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년 한 때 증권가를 강타한 '매도' 보고서 희귀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상장사와 애널리스트간의 보고서 갈등이 이번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완전히 사라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애널리스트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 그리고 최소한의 소통 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상장사와 애널리스트 두 주체 간의 상호 이해와 견제가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번 가이드라인 제정이 애널리스트들의 신념 구현을 위한 '독립기념일'로 남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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