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세월호에 이어 최근 경주의 잇단 지진 사태 등 각종 재난상황에서의 대응 매뉴얼이 없어서 재난규모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남북 분단 상황 때문인지 대북 위험을 강조하는 교육은 넘치게 받았지만 막상 생활 주변 곳곳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에 대처하는 교육은 받은 기억이 없다.

대중매체들이 이런저런 재난상황에서의 대처요령을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도 국내 상황에 맞춰 만들어진 매뉴얼이 아니라 ‘외국에서는 이런다더라’ 하는 식의 소개들이어서 여건이 다른 국내에서의 실제 사고 발생시에는 부적절한 대응법이라는 지적도 종종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런 매뉴얼 없는 분야가 꼭 재난 상황에만 국한돼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일의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매뉴얼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해서 종종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국민적 불신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경주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 문제로 온 사회가 들끓더니 지진 사태보도로 뒤덮인 대중매체에서는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대우조선이며 한진해운이며 잇단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온갖 혼란과 불안감은 그 불길이 잿더미 아래서 꾸준히 타고 있는 불씨와 같다.

적어도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이런 사태를 노사관계에 있어서나 관련분야 수많은 종사자들, 하청기업들 등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인위적 재난상황으로 보고 일어날 후폭풍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자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경제를 정치논리로 풀려고 하는 집권세력이나 세월만 가라고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이나 어느 쪽에서도 이런 대비책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물론 집권세력의 정치논리를 같은 정치논리로 맞받아치려는 야당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보이지도 못하고 있어서 더 답답하지만 적어도 잠시 왔다 가는 정치철새들은 그러려니 해도 철밥통 공무원들이라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들을 그렇게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 공무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받아내려는 고위 관료들의 노력이 없는 한 아이디어는 그냥 썩어 버려질 뿐이다. 고위 관료들은 줄타기에만 정신이 팔려 조직의 책임자로서의 최소한의 미덕도 발휘하지 않는다.

관료들의 이런 무사안일 복지부동은 집권자의 귀가 닫혀 있을수록 자심할 수밖에 없다. 이미 결론 다 내놓고 무조건 따르라고만 하는 지도자 밑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생산될 리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준도 없이 정치논리로 인사를 휘두르는 지도자 밑에서 더욱 더 몸을 웅크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일은 금융권에서도 매한가지로 벌어지고 있다. 각 계급별로 주어지는 자율권이 명료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위험한 일, 성공하면 공은 없고 실패하면 책임만 뒤집어쓰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은 없다. 그래서 신생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을 위한 ‘신용대출’을 정부가 제아무리 요구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용대출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틈바구니를 각종 낙하산 인사를 위한 특혜대출, 정치권력과 줄 닿은 인맥을 이용한 청탁 등이 비집고 들어간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그런 비정상적 대출들은 거의 반드시 부실채권을 남긴다.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벤처기업 육성의 필요를 절감하고는 있으나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위험비용을 감수할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다. 물론 아직도 공공기관 돈은 눈먼 돈이고 금융기관 대출은 특혜일 뿐이라고 여기는 비뚤어진 가치가 꽤 폭넓게 퍼져있는 까닭에 금융기관들도 그런 위험을 담보할 대비책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통상 10% 정도로 보고 금융기관에서도 그만한 위험부담을 안고 벤처투자에 나선다고 들었다. 물론 성공시 투자금 회수방식이 그런 손실들을 보전할 수 있도록 짜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모험적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도 않고 그런 문제에 대한 체계적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결정권한은 나날이 위로, 소수에게로 몰려가고 사회는 변화의 동력을 잃어간다.